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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 [리뷰] 차라리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면...

효준선생 2016. 1. 8. 07:30

 

 

 

 

 

 

 

인간이 기억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살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 안엔 잊고 싶은 것들이 넘쳐 나기도 한다. 행복함을 느낄 수 없는 고통의 기억들을 삭제 할 수 없는 건 기억함으로써 얻는 것 이상의 반대급부다. 그런데 어느날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인해 과거 10년 동안의 기억만이 지워졌다고 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행복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는 최루성 서사에 묘한 미스터리적 성격을 덧입혀 포장한, 낯선 질감의 멜로 물이다. 번듯한 변호사지만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질 만큼 정신 장애를 안고 사는 남자. 그에게 낯설지 않은 여자가 나타나고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이 10년동안의 기억을 잃어 버렸다는 사실 말고도 어쩌면 그 기억을 다시 회복할 지도 모른다는 강박이 들면서 이야기는 차분함과 동시에 굴곡진 사연들을 펼쳐 놓으며 긴장의 끈을 쉽게 놓아 주지 않는다.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한낱 일회성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진실을 드러낼 때까지 상당한 시간을 소요했다. 남자를 둘러싼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남자의 심리 변화를 지켜본다. 지루할 법도 있지만 그걸 커버하는 건 역시 혹시나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낯선 사람에게서 익숙한 향취를 느끼는 것은 기억으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 지점을 수시로 노출한다. 그걸 알아채는 관객과 무디게 받아 들이는 관객의 차이는 있어 보인다.

 

                           

 

심리극에 준하도록 촘촘하게 편집된 구성과 남자의 과거를 마치 퍼즐 짜 맞추듯 끼어 넣는 장치들은 일견 세련되어 보이기까지 한다. 강남 신흥부촌을 오고 가는 등장인물들의 동선은 매끈하다. 군더더기는 쏙 뺀 채로 주요인물들의 간결한 대사는 영화를 오로지 한 남자의 기억에 의존하게 만든다. 하지만 결론부에 이르러 잊힌 사연의 속 사정들이 풀려 나가면서 그들이 뿜어내는 울음 장면에 왔을 때 모든 관객들과 공유하기엔 다소 일러 보인다. 그 이유는, 그런 상황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10년을 삭제 당한 남자의 기억을 쫒는 과정은 신선하지만 그렇게 된 시점의 상황은 많이 봐온 설정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기억의 한 뭉텅이를 덜어낸 채 살아야 하는 남자의 일상을 그리고 있지만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감정까지 매끈하게 잘 담아내지는 못한 듯싶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언젠가는 남자가 스스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진실을 말하는 데 머뭇거린다. 나를 잊지 말라고 하는 건, 그 자신이 다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잊지 않겠다는 말 뒤엔, 잊을 수도 있음을 이해해 달라는 완곡의 표현처럼 들리기도 한다. 실상, 그는 많은 것들을 잃었다. 차라리 다시는 기억할 수 없는 상태를 바랐는 지도 모르겠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