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도리화가 - [리뷰] 소리는 남고 사랑은 가네

효준선생 2015. 12. 19. 07:30

 

 

 

 

 

 

 

판소리가 하층민들의 오락이었다는 걸 기술한다. 그런 이유로 오래도록 문화 역사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그것들을 향유했던 인물들에 대한 소개조차 미비했다. 동리 신재효는 그런 측면에서 거의 유일하게 판소리로서 자신의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조선 말 세상은 요동치고 있었지만 이 땅에 살던 민초들에겐 유랑극단처럼 동네를 찾아 들던 판소리 패의 구성진 노래 한 자락으로 시름을 달랠 뿐이었다. 그 안에선 지위고하를 논하지 않았다. 따로 돈을 내야 하지도 않았고 멋진 옷을 차려 입고 우아를 떨지 않아도 좋았다. 조상 대대로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흥을 귀와 눈과 몸으로 감상하면 그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먼 길을 떠나는 그들을 눈으로 배웅하면 만날 기약도 하지 못했다. 영화 도리화가는 바로 그 무명의 예술인들을 조명하고 있다.

 

류승룡와 배수지는 각각 판소리의 명장과 그를 사사하는 제자 진채선으로 나온다. 판소리는 오로지 남자들 것이었던 시절, 소리가 하고 싶어 도리정사에 들고 그곳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잠재된 능력을 발견한다. 하지만 여자가 판소리 무대에 오른다는 것만으로 치도곤을 맞던 시절, 스승과 여제자의 모험을 위태롭기만 하다. 영화는 불가침 영역에 도전하는 여성 판소리꾼의 입지전적 승부욕을 내세우지만 오로지 그것만이 아니다. 내내 부르던 춘향가와 빗대어 한 사람을 숭모하고 그 마음을 끝까지 견지했던 로맨틱한 애정서사도 곁들인다. 후반부에 이르면 멜로 영화의 모습처럼 그려지는데 일과 사랑을 모두 잡고 싶어하는 젊은 여성의 심적 갈망이 주요 모티프가 된다.

 

동리정사가 안정적인 농경사회를 꿈꾸었다면 사건이 일어난 뒤 이곳 저곳을 떠도는 모습은 유목민을 연상케 하며 그건 조선말 시대의 혼란상과도 맞물려 있다. 흥선대원군의 비호를 업고 나름대로 판소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신재효와 그의 제자들은 어찌보면 행운아 일지 모른다.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인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과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는 설정은 그래서 더 서글퍼진다.

 

세상을 향해 포효하듯 내지르는 우리의 판소리는 들으면 구슬퍼진다. 사연이 없는 이야기가 어디에 있겠냐 마는 사랑을 지키고 싶었던 남녀와 전인미답의 영역에 올라 타고만 앞선 예술인의 아슬아슬함이 이상스럽게 노곤하게 느껴진다. 곡절의 진폭이 작긴 하지만 곳곳의 풍광을 배경 삼아 풀어 놓은 우리의 소리는 영화의 흥행과 상관없이 아름다웠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