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007 스펙터 - [리뷰] 구관이 그래도 명관이네

효준선생 2015. 11. 17. 07:30








조직은 구성원으로 이루어졌지만 그 조직도 기실 더 큰 조직의 하나로 운영된다면 큰 테두리 안에서 거취를 고민할 때가 분명 온다. 세상 돌아가는 건 벽에 걸린 시계 침보다 빨라진 지 오래다 보니 온갖 기계에 의한 편의성 앞에 인간 본연이 할 수 있는 노동력은 한계에 부딪치곤 한다. 그걸 노동개혁이라거나 고용의 유연화라고 떠든다면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선뜻 체감할 수 있겠나. 여기 한 명의 실업 위기에 닥친 직장인이 있다. 목숨 걸고 세상을 안방 드나들 듯 해온 무적의 007이 설마 직장을 잃겠냐고 하겠지만 영화 007: 스펙터에서의 제임스 본드가 처한 상황이 그렇다.



 


그가 쫒겨 날 운명인 건 일종의 정리해고 수순이었다. 그가 속한 조직이 새로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고루한 부서라는 설명과 함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겠다는 새로 온 상사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드론이나 각종 감시체계를 활용한다면 굳이 사람을 고용해 가면서 사회질서와 안녕을 도모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것뿐 일까 기계에 의존해 해가 되는 인물은 싸그리 없애도 사람 마음 속까지 기계가 알 수는 없다. 영화에선 이런 상황을 놓고 민주주의에 대응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좀 놀랐다. 그래도 영국 정보부인데 하는.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세계 정보부서가 몇 개 모여 평화 질서를 위해 감시체제를 동원하자는 투표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리 영화 속 이야기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짤릴 위기에 몰리겐 된 위기의 월급쟁이 007, 늘 그래왔듯 시작도 끝도 그는 일당백이고 독단적으로 움직이는데 이골이 나있다. 그래도 같은 편이 이런 저런 조력자 역할을 하지만 큰 줄거리는 그가 잡아간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의 활약은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제압해야 할 악역이다. 스펙터는 현존하는 가장 악랄한 조직으로 설명되어 있고 그 동안 시리즈를 통해 벌어졌던 비극적 사태들과도 연루되어 있음을 밝히지만 막상 조직의 수장이라고 해야 할 인물이 제임스 본드에게 어린 시절 갖게 된 아주 단순하고 사적인 감정을 이제 와서 터뜨리고 있다는 데서 후반부 폭발력을 상실하고 만다.



 


인연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기도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선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알고 있던 사람에게 당하는 난처함인지라 더 강하게 저항하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이번에 철거되는 구 정보국 건물처럼 물갈이가 되는 정보부서와 요원들의 중간 성격의 에피소드를 담은 탓인지 아무리 액션 영화 라고 해도 드라마엔 크게 몰입할 순 없었다.



 


상대해야 할 적이 극히 단순화되고 익히 알려진 배우(크리스토프 왈츠)가 나서면서 결말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그래도 다량의 물량 공세로 이탈리아와 북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펼쳐진 액션 시퀀스는 역시라는 감탄사를 쏟아내게 만들었다. 다니엘 크레이그와 레아 세이두의 호흡은 나이 차이 때문인지 몰라도 글자 그대로 가디언즈 관계처럼 보였지만 열차 안에서 보여준 그녀의 실루엣엔 반할 수 밖에 없다. 007은 주제곡이 오프닝에 깔리는 크레딧이 압권인데 전작에서 아델이 만들었던 카리스마가 떠오르는 걸 보니 이번 영화는 그 부분도 아쉽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