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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부자들 - [리뷰] 오월동주에 오르지 못할 자들

효준선생 2015. 11. 20. 07:30

 

 

 

 

 

신문에 올라오는 사설을 언제부터인가 읽지 않게 되었다. 역사 교과서가 편향되었다며 국가가 나서서 하나로 뭉뚱그려 놓겠다는 것 이상으로 신문 사설이라는 것도 지독할 만큼 편향된 논조를 가지고 있다. 보수나 진보라는 이념의 잣대에서 놓고 따지면 이들을 능가할 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논설 주간은 어떻게 보면 신문사의 최고 꼰대이자 쉽사리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문도 상품이라 한다면 그런 글 나부랭이에 감읍하거나 희열을 느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는 맞춤형 놀이기구일 지 몰라도 그 반대편의 시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헤드 카피 한 줄만 봐도 골치가 아파오기 마련이다. 무슨 의도로 썼는지 바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웃기는 건 그런 글을 누가 읽는 지 몰라도 며칠 뒤에 사설에서 제시된 정말 비상식적인 일들이 이 땅 위에서 곧잘 일어난 다는 점이다. 마치 감독이 사인을 내고 선수가 충실하게 수행하는 스포츠 경기처럼 말이다. 세상은 요지경이라지만 그것들이 일상에 끼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더럭 겁이 나기도 한다. 혹시 저들은 모두가 짜고 치는 고스톱 패거리가 아닐까 해서 말이다.

 

 

최근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아닌 웹툰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들이 활발하다. 영화 내부자들 역시 오래 전에 영화화 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오늘에서야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워낙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려냈다는 소문인지라 배우 하나를 둘러싼 갖가지 소문을 뒤로 하고 확실히 이번 주 개봉작 중에선 가장 주목을 받을 공산이 컸던 영화다. 원작에선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하니 이 영화에선 결말을 기다리는 관객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악의 무리들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부분이 농후한 지라 그것들을 일소하는 작업은 분명 쉽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어둡기만 할 것이라는, 그래서 느와르 장르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넘치는 유머와 맛깔스러운 대사로 인해 군데 군데 웃음도 새어 나왔다. 그런 웃음들은 그래도 이 더럽고 추악한 사회에서 희망을 볼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나 안도 때문이었다.

 

 

 

자동차 회사라는 재벌과 법조계에서 옮겨온 유력한 국회의원, 그리고 이들을 한데 엮으며 세치 혓바닥으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어느 신문사 논설 주간,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제 몫과 복수를 꿈꾸는 건달, 그리고 그를 도와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젊은 검사가 이야기의 축으로 등장한다. 이들 다섯 남자의 만남과 충돌,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이야기들은 한결같이 모순 덩어리들이다. 표피적으로는 동맹관계처럼 보이지만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는 관계, 그리고 그래도 될 정도로 박약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마치 악어와 악어새처럼 보인다. 이들 중 누가 살아남고 누가 매장당할 것인지 헤아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부자는 당연히 조직 안에 위치 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확실히 배신이라는 코드가 난무할 것이라는 추측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가진 걸 권력이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믿을 만한 지인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돕는다는 건 결국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함이고 그 사이에 불리는 믿음은 얼마나 공고한 것일까 하물며 아무도 뒤를 봐줄 사람이 없는 일개 깡패나, 경찰에서 검찰이 된 채 입만 벌리면 족보없어 무시당한다며 자학하는 젊은 검찰에게 호랑이 굴 속 같은  '내부'로 들어가는 일은 얼마나 두렵고 험할까

 

 

이야기 구조는 빈약한 것은 아니다. 등장하는 인물들도 많고 그들이 안고 있는 이야기도 풍성하다이들은 모두 커넥션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한 쪽 끈이 풀리면 모두가 벼랑으로 떨어지는 구조를 보여준다. 짙은 선정성을 통해 움켜 쥔 자들의 추악함을 꼬집고 반복적인 폭력성을 통해 당하는 사람들의 공포감을 배가 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말부에 이르면 과연 내부자란 어디에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지 약간 혼동이 된다. 그저 사회의 부조리를 냉소적으로 고발하는 영화가 아닌, 일방적으로 코너에 몰렸던 사람들에 의해 카운터 펀치를 날림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내부자로서의 등장이 생각보다 짧고 펀치력이 강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장르의 영화고, 특히 한국형 범죄 드라마로 확대 생산될 가능성이 큰 이유는 그 바닥의 생리에 대해 이야기 해줄 사람들이 전보다 많아졌기 때문이다. 엔딩 타이틀에 이 영화는 모두 허구라는 자막을 깔았지만 영화를 보면 분명 떠오르는 인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꼽으라면 깡패 역을 맡은 이병헌이 검사 역의 조승우의 면회를 마친 뒤 단독 샷으로 잡히는데 앉아 있을 때는 애잔한 눈빛이었다가 일어서면서 미묘하게 변하는 결의에 찬 눈빛이 압도적으로 느껴졌다. 그냥 연기의 허세가 아닌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결정적인 단서로 제시되는 장면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