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사도 - [리뷰] 마음에 병이 들었기 때문이오

효준선생 2015. 9. 17. 07:30

 

 

 

 

 

왕조시절, 현재의 왕의 뒤를 이을 사람이 누가 될 지에 대한 문제는 여러 사람들에겐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로지 단 한 사람에게 나라의 권력이 집중된 시절, 줄을 잘 타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이었다. 易姓쿠데타가 있지 않고서는, 역사적으로 분명 그럴 기회가 무수했음에도 많은 경우, 여전히 풍전등화 같은 왕족 계보에서 한 사람을 옹립했다는 건 그만큼 왕에 대한 권위가 상상할 수 없었다는 걸 의미한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300년이 넘어가면서 후대의 왕들은 명과 청으로 이어지던 중국 땅의 주인의 눈치보기에 이미 익숙해졌고 수렴의 정치가 극대화되어 안으로 권력 다툼이 극단을 치달았다. 소위 붕당이라는 건 조선 중기에 시작해 망하기 전까지 조선 정치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는데 그게 잠시 숨을 고른 시기를 고르라면 영조 때라 하겠다. 사색당파로 나뉘어 치열하게 권력을 쟁탈하던 시절을 접고 각자 우위에 설 수 있는 분야에서 암묵적인 휴전을 하던 그 때, 영조는 자신의 중립이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는데 유일한 방책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 어이없이 한 인물이 화를 당하게 되었으니 역사에선 그를 일컬어 사도세자라 했다.

 

 

영화 사도는 바로 뒤주에서 아버지에게 갇혀 죽은 세자로 잘 알려진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인물을 그린 사극이다. 이미 수많은 매체를 통해 그 비극적 사연들이 극화되고 잘 알려져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게 중론이지만 오랜만에 다시 사극 장르를 들고 돌아온 이준익 감독은 정공법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손자로 이어지는 남자들의 절절한 사연을 결코 가볍지 않게 그려냈다. 원래 구중 궁궐의 야사들은 흘러 넘칠 지경이고 왕을 둘러싼 입에 담지 못할 이야기들도 지천이지만 이 영화는 삼천포로 빠질 가능성이 큰 곁가지를 거두고 아예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뒤부터 8일째 되는 날까지 챕터로 나누어 플래시 백 구조로 왜 이들이 이토록 철저하게 서로를 등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귀하디 귀한 하나뿐인 아들을 상대로 영조가 갖고 있던 심리는 무엇이었는지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넘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가장 큰 줄기로는 영조와 사도세자 간의 심리적 알력이지만 그 사이에 빼놓을 수 없는 것 역시 문약하기 이를 데 없었던 성종 이후 조선의 왕들 중에서 그래도 가장 카리스마 넘쳤던 영조가 실상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청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당시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 선택했던 것이 특정 당파와 차마 거부할 수 없는 모종의 담합을 했었다는 부분이다. 이건 영화 내내 긴장감을 유발하는 기능을 한다. 어린 시절 사도세자의 총명함에 흡족해 했던 영조가 지금의 치마바람을 일으키며 학원가를 맴도는 강남 엄마들 이상으로 교육열에 충실했던 캐릭터 이상으로 신경을 써야 했던 부분이다.

 

 

당시 대리청정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자신의 후대를 이을 세자를 내세워 미리 정치를 배우게 하는 방식이었는데 개혁 군주의 면모를 보이던 사도세자에게 오히려 부담을 느꼈던 당시 특정 정파의 견제와 샌드위치가 된 영조가 조금씩 아들과 거리를 두려는 심리적 갈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이들 부자가 공히 안고 있는 신분에 대한 컴플렉스다. 영조는 비천(?)한 후궁의 몸에서 난 次子의 신세였고 사도 세자 역시 정실이 아닌 빈에게서 나온 몸이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문제지만 당시로서는 이런 부분이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었다. 나이가 든 영조가 격에 안 맞는 궁궐 여인들을 침소로 들이는 장면들은 사도세자를 대신할 아들을 얻기 위함도 있었지만 어쩌면 세간에서 들리는 소문들을 잠식시키기 위한 행동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도세자는 자신의 명운이 이미 기울었다는 판단을 하고 나서 보이는 기행은 확실히 나라의 주인이 될 자격을 상실했다는 판단을 내려줄 것이다. 저런 인물이 만약 조선의 왕이 된다면? 조선은 망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시는 영조가 이미 오랫동안 집권을 하며 나름대로 나라의 안정을 도모했던 시절이었기에 뒤를 이은 昏君 하나의 존재만으로 나라가 엎어질 지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불어 묘한 게 이게 하늘의 뜻인지는 몰라도 할아버지의 아집과 아버지의 비운을 모두 수용한 채 세종과 더불어 역대 최고의 明君으로 일컬어지는 정조의 탄생은 그래서 더 극적인 것이다.

 

 

영화 변호인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으로 나왔던 배우 송강호는 두 작품에서 연달아 최고 국정 운영자로 나온 셈이다. 항간에서 노 전 대통령을 정조와 비견을 하곤 하는데 이번엔 정조의 등장에 싹을 틔운 인물로 나왔으니 영 연관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 최고의 히트 상품이라 할 수 있는 유아인은 영화 베테랑과 영화 사도를 통해 정말 무서운 연기자라는 느낌을 받게 했다. 조선 역사상 연산군, 광해군과 함께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사도세자를 연기하며 과연 그가 아니었다면 사도세자에 대한 감정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두번 째 대리청정의 장면에서 자신의 의견에 공박하는 영조와 반대파의 집요한 공격에 어쩔줄 몰라하는 장면은 마치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이 영화의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마음의 준비도 안된 채 받아내야 했던 다소 과한 감정의 이입과 몇몇 조연배우들이 좀 어색한 모습으로 분장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기도 했지만 이 시대와 묘하게 오버랩되는 부분도 있고 그런 부분들이 크게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율해낸 연출의 힘도 느껴진다. 추석 연휴를 전후로 개봉하는 이 영화가 과연 가족 영화로 적합한 지 여부는, 지금 이 시간에도 학원 순례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을 대견하게 보는 일부 학부모들에게 옳은 교육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에게 성공적인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좋은 共器가 될 것 같았으며 역사 배우기가 논란이 되는 이 시점에 책이 아닌 영상으로도 훌륭한 역사 공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제안을 해보게 된다.  중고교 학생들의 극장행을.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사도 (2015)

The Throne 
8.2
감독
이준익
출연
송강호, 유아인, 문근영, 전혜진, 김해숙
정보
시대극 | 한국 | 125 분 | 2015-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