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우먼 인 골드 - [리뷰] 돌려주라. 제 것이 아닌 이상

효준선생 2015. 7. 14. 07:30

 

 

 

 

 

 

배경은 오스트리아지만 한국으로 치환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영화 우먼 인 골드는 우리의 과거 역사의 한 페이지와 많이도 닮아 있었다. 독일 나치 치하의 오스트리아 예술과 문화를 사랑한 나라지만 국세가 기울며 풍전등화의 하루를 보낸다. 그 사이에 적지 않은 문물과 예술품들은 독일군에게 혹은 그들에게 협조해온 오스트리아의 관방에게 넘겨졌다. 개인의 소장품들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강제로 약탈당한 셈이며 남의 나라 문화재로 자국의 박물관을 채우는 게 익숙했던 힘센 나라들의 방관으로 잊혀질 뻔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환수는 이 영화에서 보듯 지극히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미술작품과 작가의 이름을 매치해가며 외울 수준은 못되지만 화풍을 보면 대강 누구의 작품이라는 건 추측할 순 있다. 이 영화의 주된 모티프가 되는 작품도 여러 루트를 통해 익숙한 작품인데 이 작품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역사의 한 장면들이 영사기의 낡은 파노라마 영상처럼 펼쳐졌다. 세계대전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영화들은 무수히 많고 아직까지도 소재를 달리하며 꾸준하게 선을 보이고 있다. 나치에 대한 평가는 유럽 사람들에겐 공히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만 그냥 덮고 넘어가자는 사람은 없다. 현재 독일 정치인들과 당시 가해자의 입장에 섰던 사람들의 반성과 참회가 끊이지 않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의 일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묘하게도 간송 전형필 선생의 일화가 떠오른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이 나라에 있어야 마땅한 유물과 문화재가 다른 나라에 팔려가거나 빼앗기는 걸 보면서 자비를 들여 사들여 지금까지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의 우월성을 확인하게 해주는 공()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이 자기 고모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을 돌려 받는 데 결정적인 포인트가 된 부분은 아이러니 하게도 뿌리였다.

 

 

유대인들이 오스트리아의 주류가 되지 못하면서 겪었던 마음의 상처들, 그리고 나치 침공 당시 가장 먼저 해를 입게 되는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그녀가 살기 위해 도미(渡美)를 한 이유도 어쩌면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정주할 곳 없는 운명과도 같아 보였다. 그녀를 돕는 변호사 역시 쇤베르그 라는 음악 교과서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명 작곡가의 손자로 나온다. 그 역시도 뿌리는 오스트리아로 영화 중반 그가 포기하지 않은 채 어려운 소송을 이어가는 주된 동기가 된다.

 

 

문화재 환수와 자신의 뿌리에 대한 긍지가 이 영화의 주된 주제이지만 한 가지 가려져 있는 건 만약 그녀가 지금 미국 국적이 아니었다면, 이 지난한 소송의 결과가 뜻하는 대로 풀렸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녀와 변호사가 비록 오스트리아와 관련이 있지만 현재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외교적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부분이다. 영화에선 언급되지 않았지만 사유 재산에 대한 부당한 편취는 비단 그녀 한 사람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자신이 원했던 그림을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랬어야 했을 것이다. 우린 아직도 비슷한 사례를 가지고 이웃나라와 심심치 않게 분규가 있다. 우리 것임에도 되돌려 받지 못하게 만드는 부조리한 외교법은 차치하더라도 우리 것임에도 그까짓 되돌려 받지 못한다고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는 일각의 분위기가 안쓰러울 따름이다.

 

 

이 영화에서 집안의 가보나 다름없는 클림트의 작품을 되돌려 받기 위해 애를 쓰는 노파로 나오는 헬렌 미렌은 영국 출신이면서도 고국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연을 담고 있는 주인공으로 열연을 한다. 악을 쓰고 몸을 쓰는 역할은 아니지만 유머러스하게 풀어 놓는 그의 언변을 듣고 있으니 지루한 소송극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이 영화를 한결 부드럽게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영화 우먼 인 골드의 뜻은 그림을 약탈한 자들이 편의에 의해 자의적으로 붙여 놓은 클림트의 대표작의 이름이다. 제 모습을 되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걸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우먼 인 골드 (2015)

Woman in Gold 
8.6
감독
사이먼 커티스
출연
헬렌 미렌, 라이언 레이놀즈, 다니엘 브륄, 케이티 홈즈, 타티아나 매슬래니
정보
드라마 | 미국, 영국 | 109 분 | 2015-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