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이면 대충 시대 흐름을 기억해낼 수 있다. 전 년도 100억불 수출을 달성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해댔고 무려 17년이나 한 자리를 지키며 철권 정치를 마다 하지 않았던 정치인에 대해 슬슬 신물이 나던 때였다. 그러나 곧 다가올 몇 년 뒤를 예측하기엔 나도 세상도 여전히 어두웠다. 모든 것이 아날로그 였던 때였다. 그때도 지금의 시선으로 봐서 엽기적인 사건들이 수시로 발생해서 신문 사회면을 도발적으로 장식했고 그 중에서도 어린이 유괴사건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빈번했다. 그건 어쩌면 기획 범죄를 저지를 만큼 수준도 되지 않았고 비슷한 사례를 통해 한 몫 잡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렸기에 그랬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범행 대상이 취약한 어린이였으니 눈 한 번 딱 감으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한 듯싶다.
영화 극비수사를 보기 전 극장 로비에 붙어 있던 당시 유괴사건의 프로필들을 보았다. 한자 이름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한국인 중에 매(梅)씨 성이 있던가. 기사의 진위를 떠나 이 영화의 결말을 유추할 수 있게 되자 궁금증은 그대로 휘발되고 말았다. 이제 남은 건 알려진 대로 과연 수사 과정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 어느 점쟁이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 뿐 인 셈이다. 대개의 수사 극이 그렇듯 이 영화도 사건이 발생하고 독특한 캐릭터의 형사를 중심으로 팀이 꾸려지고 예기치 못한 단서들이 등장하며 극의 흥미를 끌어올리려고 시도를 하는데 이 영화는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주인공인 공길용이라는 형사가 조직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채 허둥거리고 있다. 아이의 생명이 달린 유괴범죄엔 우선 공개수사로 할 지 비밀수사로 할 지 선택을 해야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차이에서 오는 긴장감은 없다. 다시 말해서 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유괴범죄의 중심엔 범죄 자체가 아닌 아이를 구하고자 하는 한 남자의 우직한 믿음과 그를 서포터 해주는 천리안 같은 점쟁이의 조언이 자리하고 있다.
대개의 형사물은 팀웍이 잘 발휘된다. 부패 경찰이 주인공인 영화도, 혹은 이중 플레이에 능한 경찰이 주인공인 영화도, 그것도 아닌 정통 형사물에서 비춰지는 경찰엔 믿을 만한 수하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런 장치들을 쏙 빼냈다. 오히려 범인보다 더 악질적으로 방해를 하는 경쟁부서원들의 농간이 보기 싫을 정도로 다뤄지고 있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범인이 보여주는 치명적이지 못한 악랄함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에 와서 범인의 정체와 범행동기가 밝혀지면서 이 영화의 시점이 최근이 아니라 무려 37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된다. 지금처럼 첨단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원들 간에 연락을 취할 휴대폰 조차 없던 시절이다. 구닥다리 무전기가 제 역할을 못하는 장면을 길게 삽입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다시 말해 범인도 형사도 그다지 스마트하지 않았던 시절 기를 쓰고 범인을 잡고 싶었던 한 형사의 애달픈 사연이 글자 그대로 오래된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의 배경을 재현하기 위해 집어 넣은 여러 가지 장치들은 마치 소품 쇼를 보는 듯 하다. 부산 일대와 서울 여의도가 중심이 되는데 곽경택 감독의 페르소나인 ‘부산’을 제외할 수 없는 건 이해가 되지만 왜 굳이 하고 많은 곳 중에 여의도였을까 당시 여의도엔 국회의사당과 비행장 활주로에다 만들어 놓은 516광장만 있던 곳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당시 서울 사람들은 집집 마다 화장실과 부엌이 딸린 개별 주택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흥분을 했다. 여의도에 조성된 아파트 청약 현장엔 긴 줄이 만들어졌고 거기서 살게 된 사람들은 부자 소리를 듣곤 했다. 이 영화에서 유괴된 아이의 부모의 직접적인 집은 아니지만 가진 자만의 이미지가 된 여의도 아파트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조직은 혁혁한 공을 세운 그에게 또 다른 강요를 하고 모진 소리를 못하는 강형사에게 기다림은 오히려 득이 되었다고 했다. 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건과 실명 인물들의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이다. 그런데 한 아이가 두 번에나 유괴당했다는 더 극적인 이야기를 묶어서 영화로 꾸몄다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싶고 유괴범죄와 조직간의 알력 장면이 진전을 보지 못하며 덜컹거리기에 사건 해결과정에 집중을 하며 보기에 적합한 범죄물 영화로선 아쉬움도 없지 않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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