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 [리뷰] 지난 추억을 하나로 엮는 기술

효준선생 2015. 6. 3. 07:30

 

 

 

 

 

 

일본 나라(奈良)는 한국의 경주처럼 고적한 역사 도시다. 오래된 유적도 많지만 그것 때문인지 젊은 사람들은 도회지로 나가는 바람에 시골에는 나이 지긋한 노인들만 산다. 농촌 공동화 현상이 이곳이라고 지나치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도시 생활에 찌든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분위기 좋다고 찾아오니 그런대로 생활은 유지할 수 있는 모양이다. 이런 행렬에 한국의 감독이 로케이션 취재를 오면서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시작된다.

 

 

 

건재 감독의 이번 영화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에 대한 인연이 아닌 같은 장소를 두고 각자가 품고 있는 옛 추억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장소를 두고 느낌을 공유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장소로 인해 특정한 인물이 떠오를 때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하게 될 공산이 크다.

 

 

한 여름의 나라는 상당히 더운 이미지다. 땀도 흐를테고 눅진거리는 느낌이 좋지 않지만 그 곳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게 되는 순간의 뜨거운 청량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르다. 그 옛날 한국에서 찾아온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일본 청년, 그는 고향인 고조에서 감을 재배하는 귀농 총각이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이드를 자처하며 조금씩 여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비칠 기회를 노린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내일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조급해진 그는 얼떨결에 사랑 비슷한 것을 고백해보고 그로 인해 그 더웠던 한 여름은 그에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된다.

 

 

영화는 멜로나 로맨스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노골적이지 않다. 마음엔 들어 하지만 절대로 드러내는 법이 없다. 별거 아닌 물건을 주고 받으면서 그리고 연락처를 적어 주는 장면에서의 어색함을 이기기 위한 그의 행동이 공감이 된다. 그 순간의 짜릿함은 아마 수많은 청춘 남녀들이 경험했던 그것이다. 그런데 판타지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다시 시간이 흘러 또 다른 한국인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작은 시골마을을 소개하는 순간 그는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그 때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영화는 묘하게도 시간 배열을 역순으로 정했다. 다시 말해 현재를 앞에 과거를 뒤에다 배치했다. 그로 인해 공간이 준 추억을 회상하게 만드는 효과를 배가 시킨다. 특히 흑백에서 시작해 조금씩 색을 덧입는 화면을 감상하는 신기함도 볼 수 있다. 밋밋할 것 같은 이야기에 방점은 바로 불꽃 놀이다. 휘영청 뜬 달을 보며 자기가 좋아했던 사람도 저 달을 지금 보고 있을까 상상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 펑펑 터지고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불꽃놀이처럼 찬연했던 한때의 추억이 그렇게 소중했다는 건 아직 진짜 사랑이 채 다가오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당신 기억 속에 문득 떠오르는 사랑은 어떤 곳과 관련이 있을까 흥미로운 상상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한여름의 판타지아 (2015)

A Midsummer's Fantasia 
10
감독
장건재
출연
김새벽, 이와세 료, 임형국
정보
드라마 | 한국, 일본 | 97 분 | 2015-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