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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차일드 44 - [리뷰] 진실을 침묵시키다

효준선생 2015. 5. 24. 07:30

 

 

 

 

 

 

하루 아침에 다른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야 한다는 건 공포다. 시간이 흘러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마치 한 나라의 역사로 인식해서 무덤덤해졌을 지도 모르지만 당사자들은 세대가 바뀌어도 그 피눈물 나는 역사의 아픔을 잊지 못할 것이다. 바로 우리도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소련이 두 차례 세계 대전을 통해 이른바 승전국이라는 타이틀을 움켜 쥐게 된 건 지겨운 종전을 의미하지만 이웃의 여러 나라들에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승자의 옆에 껌 딱지처럼 붙어 연방국, 혹은 위성국가라는 달갑지 않은 칭호도 감수할 수 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추억의 단어가 되었지만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은 냉정 시기를 거치며 공포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우리나라 교과서에선 동유럽의 위성 국가에 대한 소개마저도 금기시되던 때가 있었을 정도였으니 그 당시를 살던 민초들의 삶은 미루어 짐작도 못할 것 같다. 영화 차일드 4420세기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는 시기, 우크라이나 출신의 군인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그 자신이 아동 연쇄 살인이라는 범죄 행각을 거의 맨 몸으로 파헤쳤던 실화를 극화한 것이다. 피지배 국가에 내려진 소개령, 궁핍함 속에서 기아로 죽은 아이들이 속출하고 그 와중에 겨우 살아남은 아이는 어느새 자라나 소련의 군인이 되었다. 이 말은 그 역시도 사회 시스템 안에서 마음만 먹으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라 사회 체제에 순응하지 못하는 자들을 잡아 넣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는 용병이었다. 용병은 필요에 따라 외부에서 수혈해 오는 존재로 필요 없어지는 순간 토사구팽 당할 처지라는 점이다. 제 아무리 말을 잘 듣고 충성심을 내보여도 태생이 외적(外籍) 인 만큼 조금은 불안한 삶이었다. 그런 그에게 반려자는 어딘간 부족하고 불안한 삶을 채워주는 원동력이자 지켜야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외모는 우락부락해보여도 눈매는 선해 보이는 그. 인정에 치우친 행동 하나로 인해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꼬이고 모스크바가 아닌 동토의 땅으로 내쫒기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늘 감시의 대상이 된 그와 오히려 아동을 대상으로 범죄행위가 단순한 일회성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는 자꾸 이상한 행동을 하지만 그런 그를 나라에선 더욱 더 감시가 필요한 인물로 낙인을 찍고 만다.

 

             

 

지금 입장에선 좀 이상한 판단이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엽기적인 살인은 있어서는 안될 무척이나 자본주의적인 산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래서 사람이 죽었음에도 그냥 사고사로 묻어 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그런 방침에 조금씩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이 영화는 체제에 순응하지 못했던 인물들과 아동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자의 정체를 찾고자 하는 남자의 줄다리기가 펼쳐 진다.

 

             

 

이 영화는 아이들에겐 무한한 신뢰의 시선을 던진다. 다시 말해 그들은 미래의 자산이며 지금의 사회를 변혁시킬 주체로 인식한다. 기성세대가 왜곡시켜 꾸며놓은 사회 시스템을 그들 세대에 이르러서는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책임감으로도 읽힌다. 그런 이유로 아동들이 연이어 사체로 발견됨에 있어 주인공은 결코 범인 찾기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데 그가 그럴 수 밖에 없는데 바로 자신의 어린 시절과의 오버랩 때문이었다. 나라를 잃은 설움, 살기 위해 모진 일도 마다하지 않지만 소련 애들과는 어딘가 다른 인간미. 그런 것으로 그를 규정하고 싶었겠지만 반대로 그 자신이 자신의 소생을 기대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적지 않게 작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쿤의 농가에서 부모를 잃은 어린 남매가 엔딩에 재차 등장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이 영화는 뭐니 뭐니 해도 톰 하디의 영화다. 그를 위해 존재하고 그가 없으면 있을 수 없는 영화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러시아 어는 단 한마디도 등장하지 않은 가운데 다국적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그가 보여준 부성애 가득한 눈빛, 진중하게 들리는 목소리.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기 위한 남편으로서의 노력들이 그의 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조정해 놓았다. 그를 좋아한다면 필견의 영화가 될 것 같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차일드 44 (2015)

Child 44 
9.6
감독
다니엘 에스피노사
출연
톰 하디, 게리 올드만, 조엘 키나만, 누미 라파스, 뱅상 카셀
정보
스릴러 | 미국 | 137 분 | 2015-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