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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간신 - [리뷰] 미친 시절을 퇴폐로 도배하다

효준선생 2015. 5. 23. 07:30

 

 

 

 

 

 

 

사화(士禍)는 조선 중기부터 시작된 유림들을 중심으로 벌어진 권력 투쟁이 불러온 참혹했던 살육이었다. 그 결과 어느 편이 이기던 줄을 잘 선 자들은 연명할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편은 구족이 멸족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사색당파라는 말이 있듯 그들 각자는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했다. 겉으로는 영, 정조 때 와서 잠시 수그러졌지만 조선이 그토록 수렴왕조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내부의 싸움에 대해 절대 권력을 가진 왕도 어쩌질 못한 채 휘둘린 이유도 있었기 때문이다. 왕의 눈을 감기고 귀를 막아 놓으면 그 누구라도 자신을 현군이라 여길 테니 말이다. 후대 사람들은 이중 몇몇을 일컬어 간신 모리배라 했지만 그들로서는 억울할 지도 모르겠다.

 

            

 

영화 간신은 독특한 소재를 극 전반에 끌어 들어 시선을 사로잡고는 있지만 사극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중궁궐 속 권력의 암투 같은 것은 없어 보였다. 미치광이처럼 묘사된 연산군과 그의 곁에서 눈치만 보는 신하들 몇몇만 있을 뿐이었다. 이 영화에서 간신으로 칭한 임사홍, 임승재 부자가 중심에 있긴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연산군의 광기에 맞서기엔 힘이 딸려 보였고 그들을 끌어 내리기 위해 또 다른 사화를 준비하는 세력도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로지 혼군(昏君)과 간신만 존재하는 영화에서 무엇을 보여주기 위해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관객들로 하여금 극장 좌석에 박혀 있도록 했는가   

 

             

 

사화에 의해 개차반 같은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사람이 아닌 짐승을 때려잡는 것 같은 장면들이 고속 카메라에 담겼고 이는 이 영화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그런데 이런 잔인함 뒤로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는 색욕에 눈을 돌린다. 이른바 채홍사란 전국 각지에서 미모의 여성을 모아 왕에게 바치는 업을 하는 자들로 임씨 부자가 이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 지점에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연산군이 먼저 원했던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끊고 오로지 음욕이나 채우며 시름을 달래게 하려는 임씨부자의 모략인지였다. 사서에 연산군은 제 친 어미의 죽음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된 후 이성을 잃고 광인의 모습을 했다고 한다. 영화에선 성인이 된 연산군이 유독 장녹수의 젖 무덤을 파고 들고 여자들의 음부를 탐하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어미의 자궁 안에 있었던 때와 갓난아이였을 때를 기억하는 퇴행의 심리다. 이런 그에게 수많은 여색들은 자신의 성기로 음욕을 해소하는 대상이 아니라 남들의 여식, 심지어 유부녀까지 포함해, 뺏고 그걸 희롱하며 증오와 분노를 푸는 대상으로 봤음을 의미한다. 그 수많은 여자들이 이른바 방중술을 통해 남다른 기교를 터득했음을 보며 주면서도 정작 왕과의 정상적인 정사 장면은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임씨 부자에게 이른바 이란 자신들의 입지를 유지시켜주는 고마운 것임과 동시에 자신들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반대 편의 소중한 보물들을 앗아오는 역할도 한다. 이른바 인질이다. 채홍사에게 발탁된 여자들은 여염집 처자가 아닌 대감님 댁 여식도 포함되어 있다. 정상적이라면 그들은 비()나 빈() 이 되어야 했겠지만 왕의 일시적 노리개일 뿐이고 고이 기른 딸을 그런 식으로 내줄 수 밖에 없었던 대감들의 분노도 당연히 있어야 했을 텐데 그런 부분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권력 투쟁은 거세된 채, 이미 권력을 틀어쥔 자들만의 주지육림만이 나열되다 보니 낯설고 낯 뜨거운 장면들 사이에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또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은 유사 성애장면들이 연산군의 광기를 대신한다는 것 말고 무엇을 상징하려고 하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만약 지금을 포함해 특정 시기를 연산군 재위 시절로 치환하다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꾸 떠오르는 화두들이 생겨났다.

 

             

 

영화 후반부 시선은 왕에서 임승재와 단희(과거 사화에 연루되어 목숨을 잃은 사림의 여식으로 상당한 심리적 기복을 안고 살아야 마땅한 여자)와의 멜로가 뒤섞이며 이야기의 반전을 시도하지만 캐릭터의 힘에 의존한 진행이 아니라 연출에 의한 극단적인 화면 구성과 설정등이 이야기를 압도한다. 이는 연산군의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선 두 시간 넘게, 실제로는 몇 년은 되는 시간이겠지만 그는 연민도 느낄 사이도 주지 않은 채 미친연기만 보여준다. 군주였지만 자신이 후대에 조나 종이 아닌 군으로 불리게 될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한 표정이라 봤다.  

 

             

 

간신이 간신처럼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자명하다. 본인들이 간신이라고 여기는 순간 그들은 이미 간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왕을 능멸하고 이씨 조선이 아닌 임씨 조선을 꾀했다면 이 영화의 폭발력은 배가가 되었을 텐데 그들 스스로가 정해진 틀(실제 역사에 기록된, 그래서 감독도 벗어나기 힘들었던 상상력의 범주) 안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영화의 엔딩이 허무해진 건 시달리기만 했던 무수한 여자들이나 그들을 보호해야 할 무리들, 연산군의 대척 점에 서 있던 또 다른 누군가의 봉기나 항거가 아닌 그들 스스로가 포기하고 말았다는 데 있다. 그럴 이유가 별로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 영화는 기존에 나왔던 영화와 드라마에 비춰진 극적인 인물, 연산군과는 많이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을 만들고 싶어한 그들의 집요한 패티시라는 생각이 든다. 온통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고 그 안에서 피와 살이 튀는 장면들이 아직도 기억에 있는 걸 보니 속뜻은 각자의 몫이고 시각을 자극해 대뇌에 박힌, 깊은 인상을 남긴 건 맞는 것 같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간신 (2015)

The Treacherous 
8
감독
민규동
출연
주지훈, 김강우, 천호진, 임지연, 이유영
정보
시대극, 드라마 | 한국 | 131 분 | 2015-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