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산다 - [리뷰]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한 통절한 천착

효준선생 2015. 5. 13. 07:30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볶이는 체불 이야기, 병든 누이와 아버지도 모르는 조카, 그리고 사랑하지만 결혼까지 갈 수 있을 지 모를 애인까지. 추레한 행색의 그의 어깨가 너무나 무거워 보인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살아야 했고 그는 소처럼 묵묵히 일을 해야 했다. 영화 산다는 전작인 영화 무산일기를 통해 탈북자의 일상을 어두울 정도로 리얼하게 묘사해내 많은 호평을 받은 박정범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전작이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의 경력을 자랑했듯이 이번 영화도 한국에서 공식 개봉하기도 전에 외국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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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두 편의 영화는 판타지 영화들이 판을 치는 요즘 영화계에서 리얼함으로 승부를 거는 정통파 드라마 계열의 영화라 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의 내면 심리 같은 심오한 관찰이 아니라 한 동작 한 동작에서 끌어 내려고 하는 인생 자체에 역점을 두고 있다. 밑바닥 인생의 본연을 분식(粉飾)없이 드러내고 있어 상당히 무겁게 느껴진다. 특히 주요 인물 군들이 당장의 행복과는 거리가 있어 보여서인지 그들에게 삶이란 그저 오늘 하루도 겨우 버틸 수 있으면 다행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영화는 흡사 중국의 지아장커 감독의 리얼리티 감수성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하층민의 일상을 덧칠하지 않았고 이름 값 배우들이 아니라 연기 잘하는 배우들로 포진해 사실감을 높였고 세트가 아닌 실제 존재하는 공간을 확보해 마치 그들과 동행하며 지근거리에서 구경하는 기분을 들게 한다.


 


이 영화엔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이 다수 등장한다. 주인공 정철은 산사태로 부모를 잃었고 딸 하나가 있는 누나는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병원에 갔을 때 상태만 보면 마치 망상 환자의 그것처럼 보이지만 그녀가 뭇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부분, 나중에 서울로 올라와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언질을 들어보면 혹시 다른 생각을 하고 사는 건가 싶기도 하다. 또 유독 돈과 관련되어 마찰을 빚는 사람들이 다수 등장하는 데 하청을 받고도 돈을 미수시킨다든지, 제한된 일자리를 두고 서로 다툰다든지, 자신의 혼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직원들을 겁박한다든지 하는 장면들에선 살기 위해 최소한의 경제력마저 조달하지 못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다툼의 모습들이 잘 드러난다.


 


이렇게 돈을 두고 다툼이 일어나는 현장엔 분명 갑과 을의 관계, 또 돈을 놓고 벌어지는 지저분한 기만의 모습도 여지없이 투영된다. 주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소가 공사장, 벌목장, 된장 가공 농원 등인데 특히 농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도시에 있는 대기업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암투의 모습이 벌어진다. 한정된 일자리를 곱게 나누지 못하는 장면, 무조건 생산량만을 독려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엔 노동자의 권익이나 복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해직 등. 그 와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협잡들이 마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동족을 해하는 짐승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영화는 거친 삶의 현장을 통과해 각자의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건드리고 작은 희망, 그건 그저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닌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무엇인가를 찾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 역시도 결국은 돈과 결부되어 있지만 돈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막연하게나마 제시한다.


 


무너진 토담집을 보수해서 가족을 들이는 게 인생의 꿈인 정철의 모습은 이야기 전반을 끌고 나가는 핵심 캐릭터다. 실제 자신의 아버지가 이 영화에서 농원의 주인으로 나오고 농원도 감독 부친 소유라 한다. 된장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세세하게 기록된 것도 그래서 가능했던 모양이다. 또 하나의 이미지는 새다. 부화되지 못한 유정란과 새장에 갇혀 인간이 주는 모이나 먹는 앵무새의 운명은 바로 이들 등장인물들의 면면과 흡사하다. 이렇게 리얼리즘을 추구하면서도 쉬지 않고 추상적인 이미지들을 나열해 밋밋할 뻔 한 영화에 포인트를 얹어 놓는다. 인간 관계에서 오는 충동과 마찰은 생각하지 못했던 계급간의 다툼으로 이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 사는 것 한 번 정도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정철의 모습이 장작을 패거나, 혹은 떼어낸 철문을 다시 달아 주는 것으로 치환해 본다. 정말 그런 게 삶이 아닐까라는 질문처럼.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산다 (2015)

Alive 
9
감독
박정범
출연
박정범, 이승연, 박명훈, 신햇빛, 박희본
정보
드라마 | 한국 | 175 분 | 2015-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