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명령불복종 교사 - [리뷰] 그 줄에 서지 않기를...

효준선생 2015. 5. 3. 07:30










뇌리에 오랫동안 잠재해 있었던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국민학교(지금 초등학교의 옛 이름) 6학년 여름 방학을 앞둔 어느 날 담임이 아닌 교감이 교실로 들어왔다. 마치 점령군처럼 짧고 굵직하게 선포하듯 아직은 어린 아이들을 향해 일갈했다. “너희 담임선생은 이런 저런 일로 이제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졸지에 담임 선생을 잃은 아이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무엇 때문에 갑자기 학교를 그만둔 것인지, 그리고 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인지. 시간이 많이 흘러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담임은 교장과 교감의 시책에 반하는 주장과 행동을 했다고 했고, 그리고 그 시절은 엄혹하기 짝이 없던 전두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그저 흘러 돌아다니는 소문을 아이들끼리 공유한 것에 불과했다.


 


한때는 선생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도 있고 공부를 한 적도 있다. 가르침의 중요성 보다 역시 같은 시절을 겪어온 인생 선배로서 후학들에게 제대로 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살면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동경 같은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접은 건 마찬가지로 선생 같지 않은 선생의 뒷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선생도 사람인지라 늘 선택의 순간 그 선택이 옳은 것인지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생의 목소리는 비단 개인의 것만이 아니다. 학생 시절 부모만큼이나 믿고 따르던 선생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삶의 좌표를 삼기도 하고 그들의 조언 하나하나가 피와 살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명령불복종 교사는 2008년 있었던 일제고사 반대를 내세워 시험이 아닌 체험학습을 선택한 몇몇 교사들에게 내려진 가혹한 처벌과 거기에 맞서 싸웠던 해직 교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다. 영화가 시작되고 아이들 앞에서 어쩌면 교편 생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순간 교사와 학생 사이의 전율 같은 감정이 흐를 때 그 옛날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런데 더 놀라운 장면은 그 불안한 순간 교실로 들어온 교장과 교감의 폭언에 가까운 말을 들어서였다. 한때는 같은 교직에 몸담고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에서 더 이상 교사가 아니니 나가라는 말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과연 저 장면이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게 맞는 지, 마찬가지로 아연한 모습을 한 아이들과 함께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2008년엔 서울은 공정택 교육감 시절이었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일제고사에 목을 맨 그는 일제고사의 부당성에 항의하는 교사들에게 해임과 파면이라는 무시무시한 흉기를 휘둘러댔고 제대로 된 소명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각급 학교의 선생들을 몰아내는데 혈안이 되었다. 비단 서울에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보수와 진보로 갈려 교육감 선거가 치러졌고 두 편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종 정책이 쏟아졌다. 여기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선생의 직업권리와 학생들의 면학권리 같은 건 무시되고 교육감, 아니 그 위에 또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에 가볍게 좌우되는 현상이 너무 싫었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는 평교사와 교장, 교감의 알력으로도 보일 수 있다. 같은 선생이면서도 한 세대 차이가 난다. 후자는 87체제 즈음과 이후 교육자로서의 교육을 받았을테고 후자는 독재권력 시절 애국과 반공만이 살길이라며 몰아세운 교육을 받은 세대였다. 같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직위와 직급의 차이 외에 기본적인 성향이 달랐던 그들에게 당근과 채찍으로 다스리려 하는 교육 정책 앞에서 너무 많은, 추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내용은 이미 7년전 일들이다. 그 이후 대부분의 해직 교사들이 다시 복직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한번 악몽을 겪은 뒤 자연스럽게 뭔가를 하려고 해도, 뭔가를 생각하려고 해도 자기 검열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보였다. 게다가 최근에 벌어진 몇몇의 사건을 보면 어쩌면 이 영화의 내용이 다시 반복되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는 섬뜩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줄 세워 등수를 매기는 걸 학업 성취도라는 둥, 요설을 금치 않는 자들. 자기들은 그런 방식으로 교육을 받아 무덤덤해서 인지는 모르지만 세계의 인재들과 겨루는 게 아니라 옆 자리 짝꿍보다 좀 더 잘하기 위해 몰래 사교육을 하고 그렇게 해서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 서로를 보게 하는 이런 정글 같은 학교에서 무슨 교육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마치자 나 자신도 선생을 하지 않는 게 좋았겠다 싶었다. 지식전달과 주입식 교육의 현장이 아닌 어른이 되는 훈련, 그리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려 사는 방법을 최고의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분명 만만치 않는 이 나라의 교육 현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선생들이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사제 지간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면서 겪는 충격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자꾸 눈물이 나는 게 그런 게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에 미쳐서였다. 이제 곧 스승의 날이다. 찾아 뵐 선생님 하나 없지만 나에게 뭔가를 가르쳐 준 그 많은 분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니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명령불복종 교사 (2015)

The Disobeying Teachers 
10
감독
서동일
출연
송용운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6 분 | 201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