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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차이나 타운 - [리뷰] 쓸모있다는 걸 증명해봐

효준선생 2015. 4. 30. 07:30








엄마는 많이 지쳐 보였다. 그 바닥 일이란 게 손에 피를 묻혀야 하고 언제 칼을 맞을 지 알 수 없기에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군 일가. 돈도 좀 손에 쥐었을 법하지만 여전히 행색은 추레했다. 엄마(김혜수 분)의 외모가 그걸 말해 주고 있다. 꾸미고 자시고 할 여유는 없지만 그래도 한 가지 하고 싶은 건 있었다. 자신을 대신해 누군가 자신의 역할을 해주리라는 기대감. 자신이 자기 엄마를 묻고 그 위에서 일어선 것처럼. 엄마의 눈동자에 비쳐진 한 아이의 모습이 아련해졌다.


             


 

영화 차이나 타운은 근래 보기 드문 느와르 장르를 고집하고 있다. 또 드물게 자리했던 다른 느와르 영화와는 달리 거칠고 험한 정서의 한 가운데엔 남자가 아닌 여자가 버티고 있다. 다들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지만 그녀의 인생 대부분은 가리워져 있다. 이야기는 10년전 작은 여자 아이가 엄마의 품으로 들어온 뒤부터 시작한다. 코인 라커에서 발견되어 노숙자들 틈 사이에서 키워진 아이. 야생성이 여전할 것 같지만 곱다. 밀린 돈을 받으러 다니는 에피소드를 통해 생김새와는 달리 독한 마음을 표시하지만 아직 엄마의 딸이 되기엔 많이 부족해 보였다. 그리고 그 불안한 일상에서 탈출구를 마련한 건 그 나이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불쑥 다가온 첫사랑의 감정이었다. 사랑은 분명 사치였음을 알고 있다. 상대는 돈으로 엮여있는 채무자의 아들이고 그런 그를 상대로 사랑의 감정을 여기게 된 점은 엄마에게선 느껴보지 못한 안온함이나 자상함도 있었을 테고 또 하나는 자신의 꿈을 위해 이 지긋지긋한 땅을 떠날 수 있다는 걸 인식시켜주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엄마와 그 자식들은 돈과 결부되어 있다. 고리대금과 장기밀매라는 흉악 범죄의 고리 안에서 똬리를 틀며 살고 있고 식구라는 단어는 성기게 들린다. 오로지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를 지켜야 그것이 살아있다는 반증이 되는 세계다. 숨이 막혀 온다. 차이나 타운이라는 공간 자체가 타국에서 제대로 착근하지 못한 이주민 혹은 그들의 후예이 밀집해 살고 있는 땅이라는 말이다. 살기 위해서라면,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 무슨 짓이라도 하지 못할 것이 없고 그렇게 해야 윗 세대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영화에선 쓸모있다라는 말이 대 여섯 차례 나온다. 세상에 나온 이유는 자기 뜻과는 상관없지만 기왕 살아가는 것 쓸모 있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한다. 무엇이 쓸모 있는 인생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 목숨을 해치고 자신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남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내는 일이 쓸모 있다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 알량한 돈을 벌기 위해 칼과 주먹을 휘둘러가며 나와바리를 구축해 가는 것이 쓸모 있는 것인지.


               


영화 초반부 어른이 된 일영(김고은 분)은 수금을 하거나 혹은 여의치 않으면 담그는 일을 하러 다닌다. 험한 일을 하고 다니는 데도 그녀의 행색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주워다 키워진 아이라는 마음의 부담이 얼굴에 나타난 건지, 곱상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시나브로 찾아온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신 역시도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한 뒤엔 그저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본능을 가진 야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영화는 김고은의 영화라 할 정도 비중이 크다. 충격적(?) 데뷔작인 은교를 비롯해 몬스터에 이은 세 번째 장편인데 다들 센 영화에 속하는 지라 그 연장선에 걸려 있는 이미지의 변신을 기대해보고 싶다.


             


김혜수와 김고은이라는 여배우의 역량이 잘 발휘되어야 할 영화에서 출발하지만 그녀들을 위로 끌어 올려주는 조연들의 연기도 크게 나쁜 편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한국 느와르 영화로 기억되는 달콤한 인생의 플롯하고도 흡사한 면이 있고 의사 모녀 관계를 부자 관계로 치환하면 떠오를만한 레퍼런스 영화들도 여럿이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 제목으로 사용된 차이나 타운이 영화 속에 얼마나 큰 작용을 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몇 마디 중국어와 여주인공의 이름이 마우희라는 설정이 그녀가 중국 화교출신일거라는 추정이 가능하고 주로 이들이 중국 음식을 먹어왔다는 것 말고는 연관성이 없기에 하는 말이다.


            


쓸모 있게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건 영화 속 인물 군이나 평범한 사람들이나 비슷하다.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이치도 비슷하게 작용한다. 차이나 타운이 그려놓은 약육강식의 세상이 현실의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 조금 무서울 뿐이다. 공멸해야 다시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비단 울트론의 생각만이 아니라는 걸 왜 이 영화에서 불현듯 깨닫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차이나타운 (2015)

Coin Locker Girl 
7.3
감독
한준희
출연
김혜수, 김고은, 엄태구, 박보검, 고경표
정보
| 한국 | 110 분 | 2015-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