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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윈터 슬립 - [리뷰] 거울에 비춰진 제 모습을 보다

효준선생 2015. 4. 28. 07:30




*씨네필 소울이 뽑은 5월의 추천영화






자존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터키 중부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카파도키아에서 작지 않은 호텔을 운영하며 사장님 소리를 듣는 그는 왕년에 잘나가던 배우라 했다. 소위 풍채도 좋고 호텔을 유산으로 물려 받을 정도로 집안도 좋다. 그는 남편과 헤어진 중년의 여동생과 한참 어려 보이는 아내와 살고 있다. 그저 중산층 터키 중년 남자의 일상을 그린 영화 윈터 슬립이 생각보다 큰 울림을 남기고 디 엔드 사인을 남기고 사라질 줄은 몰랐다.


              


얼마 전까지 터키 유생이라는 별명을 내세우며 방송 프로그램의 패널로 자주 얼굴을 비추던 남자의 입에서 나왔던 내용을 곱씹어 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아이딘의 사고를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평생을 양지에서만 살았던 그, 아무도 그의 권위에 대적하지 못했고 그의 말 한마디면 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런 그가 서비스 업의 선봉에 서있는 호텔을 운영한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실상 그 자신이 아니라 주변 인물을 통해서 비춰진다. 그의 감춰진 실제는 어떤 것이었을까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인적이 드물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라고는 몇몇 여행객들뿐이고 동네 주민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적적하기 짝이 없는 그곳에서 이야기의 전개는 단 하나의 사건과 등장인물들 간의 긴 대화를 통해서다. 직원과 함께 지프차를 타고 가던 도중 어느 꼬마가 던진 돌에 의해 자동차 유리창이 깨지고 그로 인해 자신의 세입자이자 꼬마의 아버지라는 사람과 언쟁을 벌인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생각보다 아주 뒷 부분에서 재현되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함의라는 게 묘하게 다가온다.


                


겨울잠을 의미하는 이 영화의 제목은 좁혀 말하자면 아이딘이라는 평범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많은 가진 터키의 중년 남성의 처지를 의미하지만 어쩌면 아직도 가부장제에 처해 있는 터키의 현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이딘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불편한 기색에 대해 주로 털어놓는 사람은 핏줄인 여동생이다. 그녀는 글을 쓰겠다면서도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는 오빠를 향해 노골적으로 쓴 소리를 감추지 않는다. 오빠는 그런 여동생에서 맞서보지만 이상하게도 지는 기분이 든다. 자신의 약점에 대해 까발려지는 것 같은 불편함 때문인지 아니면 여동생의 처지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두 사람의 관계 말고도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사이는 또 있다. 바로 외모만 봐서는 아버지와 딸처럼 보이는 아이딘 부부다. 아내의 입을 빌어 흘러 나오는 이야기들은 어린 시절 시집와 나이 많은 남편의 눈치만 보고 살았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회 분위기, 그녀가 이런 말을 꺼내는 데는 최근 자신의 존재 이유를 어스름하게 찾았다고 했건만 남편의 간섭으로 엉망이 되어 버릴 지경이라서 그렇다.


 


아이딘이라는 남자는 생김새와는 달리 타인과의 이야기를 무척 즐긴다. 그와 투샷으로 걸리는 인물들은 여지없이 그와 장시간에 걸친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어야 한다. 심지어 유리창 사건으로 마주 대한 남자와도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는데 있어 절대 물러서려고 하지 않는다. 특이한 건 그렇게 알력이 생기면 화를 내거나 폭력을 쓰기 일쑤지만 그는 약간의 목소리 톤만 달라질 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그의 말은 투박하면서도 매우 조리가 있다. 그 자신감은 냉소적이거나 이기적이거나 심술궃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그런 말조차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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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대화를 통해 한 인물이 가지고 있는 철벽 같은 고정관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타협이란 있을 수 없고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복종하고 자신의 배려에 감사하지 않으면 안될 거라는 자존심.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영역을 훼멸하려는 시도에 분노하게 마련이다. 만약 그와 상하관계, 혹은 지인이라면 분명 큰 사단이 일어났을 것이다. 유리창 사건으로 인해 그에게 찾아오는 일련의 불편함들. 그의 평상심은 조금씩 흔들린다. 여동생과 아내의 말싸움 끝에 잠시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떠난 여행,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마음을 뒤흔든 이야기를 듣는다.

 


이 영화는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당한 결과물을 얻어 냈다. 그중에서도 칸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이 이 영화의 비중을 대신 할 것 같다. 무려 20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커다란 사건도 없이 등장인물간의 이야기를 통해 한 남자의 심리 변화를 들여다 보는 시간들이 이색적이다. 그럼에도 결코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비단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사람에게 누구나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아집이 있을 수 있다. 그걸 타의에 의해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긴 힘들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시도를 하고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성찰의 과정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터키의 기암괴석과 정말 잘 어울린다. 그리고 그 과정 안에 관객으로 동참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윈터 슬립 (2015)

Winter Sleep 
9.7
감독
누리 빌게 제일란
출연
할룩 빌기너, 멜리사 쇠젠, 드멧 아크백, 아이베르크 펙잔, 세르하트 무스타파 킬리츠
정보
드라마 | 터키, 프랑스, 독일 | 196 분 | 2015-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