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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곡 하와이 - [리뷰] 허상이 되어버린 모성애를 반추하다

효준선생 2015. 4. 25. 07:30




* 씨네필 소울이 뽑은 좋은 로드무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다수 등장한 탓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의 주된 소재는 그래도 어머니였다. 나이가 들면서 소원해지는 게 당연하다고 느끼는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이야기보다 어딘지 애틋한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어머니와 자식간의 이야기는 꽤나 인상적인 영화 소재였다. 모성애라 불리는 이런 감정의 끝자락엔 반대로 모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수가 함께 해왔다.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여성성과 모성에 대한 공격, 그리고 거기에 대한 반사(反思)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이끌고 나가는데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소재로서의 모성애에 대한 공격은 실제에선 당사자가 아니고선 이해하기 어려운 아픔이 있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 사이엔 부모로서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안타까움, 모성이 거세된 채 망각만을 강요당하는 도무지 실체를 알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많은 그녀들'을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전쟁이 나서 남정네들이 죽고 아이들만 어머니의 손에 키워지던 그런 세상도 아님에도 그런 감정들이 만연되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기 까지 하다.



 


부곡 하와이는 경상남도 창녕에 있는 휴양시설이자 영화 부곡 하와이의 주인공에겐 씻을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이 잠든 곳으로 등장한다. 30년 전만 해도 고급 휴양지로 각광을 받았고 이름 그대로 하와이에 갔다 온 듯한 기분을 만끽하게 해주었던 곳이 어느새 규모로 밀어 붙이는 인근 대형 위락시설에 밀려 사람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추억의 장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아 기억 자체가 정체되어 버린 두 여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적절하게 비유됐다.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긴 하지만 자신들은 미치지 않았다고 호소하는 여자는 같은 곳에 있던 어린 여자와 함께 그곳을 탈출한다. 그녀들을 찾아 다니는 사람의 위협 속에서도 기지를 발휘해가며 가고 싶었던 목적지로의 항행을 계속한다. 이른바 로드 무비의 전형인데 다른 점은 이들이 왜 정신병원에 있었는지와 왜 부곡 하와이로 가려고 하는 지에 대한 궁금증이 끝까지 함께 한다는 점이다. 탈 것을 바꿔가고 가는 중간에 각자의 굴곡진 인생사들이 과연 저럴 수도 있을까 싶게 노출되고 그녀들을 보는 느낌에 서서히 동화되는 순간, 만약 그녀들이 미치지 않았다면 타의에 의해 강제 수용된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타의라는 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생겨났다.



 


그녀들에게 과거의 기억은 씻을 수 없는 충격이다. 상대에게 담담하게 털어놓지만 그 사실은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여성성에 대한 공격이며 이제 겨우 16살 정도 된 여자아이가 감내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상실된 것에 대한 보전으로 새로운 살아있는 무엇인가를 찾는 것 같았다. 있지도 않은 아이와 이젠 세상에 없는 아이를 찾은 모습이 교집합을 이루고 그 허상에 사로잡혀 그들만의 세상 안에서 살았기에 그녀들은 보통 사람처럼 살 수 있는 권리를 억제받은 것이다.



 


마흔 초반의 여자와 십대 후반의 여자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두 사람은 의사(擬似) 모녀관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혈연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젠 찾을 수도 없을 지 모를 빈 공간을 이 두 사람은 시나브로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가깝게 있었으면서도 자신이 갈구하고 있었던 아픔에 대한 보전, 그리고 보듬어 주고 있었던 생명체에 대한 안온감을 두 사람은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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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을 장식했던 장면이다. 개울을 가로 지르는 시골의 작은 다리, 그 아래로는 더 작은 터널이 있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니 밝은 공간이 드러난다. 두 사람이 단기간의 동병상련을 극복하고 예전과 같았던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잊히지 않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스스로를 갉아 먹으며 살아야 할까... 로드무비 특성상 그녀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특히 창녕 우포 늪에서의 장면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부곡 하와이 (2015)

Illusionary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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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하강훈
출연
박명신, 류혜린, 오성태, 이영숙
정보
드라마 | 한국 | 84 분 | 2015-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