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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장 - [리뷰] 박제가 된 남자, 버텨내다

효준선생 2015. 4. 12. 07:30

 

 

 

 

*씨네필 소울이 뽑은 4월의 추천작

 

 

 

죽음이라는 화두가 전보다는 유연해진 걸 느낀다. 아무도 원치 않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그 길에서 사람들은 주춤거렸지만 이젠 다양한 이유를 들어 웰 다잉의 필요성을 입에 올린다. 남은 사람에 대한 부담이 싫기도 하고 전보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고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비록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이후의 자각이겠지만 가족 중에 오랜 고통의 투병생활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죽음에 대해선 남들보다 또 다른 시선을 가질 법도 하다. 그제서야 깨닫는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임권택 감독의 백두 번째 장편영화 화장은 인생의 뒤안길을 준비해야 할 나이대의 중년 부부가 겪는 체득적이고 심정적인 과정을 담담하게 읊어간다. 화장품 회사의 알아주는 마케팅 실력자 오상무와 그의 아내, 아내의 투병생활은 그에게 육체적으로는 힘든 일이지만 그는 결코 내색하려고 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간병을 하고 있는 남편 행색을 거의 내비치지 않고 일이 끝나면 병원에 와서 병든 아내의 수발을 아주 능숙하게 해낸다. 전에 이미 겪었던 일이라는 설정이면서도 그의 그런 모습이 모범장부의 모습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런 그의 모습에 균열을 가해보려는 건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부하 여직원에 대한 낯선 감정이었다. 노골적인 이성으로서의 유혹도, 낯뜨거운 고백 같은 것도 없었다. 가끔 마주치는 눈빛이 뇌쇄적이라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조차도 일방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건조하게 그려진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병든 아내를 두고 어떻게 외간 여자에게 마음을 줄 수 있냐고 반문할 지 모른다. 그를 위해 변명을 덧붙이자면 과연 그는 남자로서의 구실을 충분히 할 수 있느냐 하는 현실적인 문제와 충돌한다. 남자는 남자만의 고통이라 할 수 있는 전립선 비대증을 앓고 있어 인공장치를 달아 소변을 배출하고 있고, 어렵사리 마련한 아내와의 잠자리에서도 약물에 의지해야 하는 형편이다. 그런 그에게 아직은 젊은 한 여성에 대한 색정(色情)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를 묻고 있다.

 

 

이 영화는 회사와 병원 말고는 그 흔한 포장마차 집에서 자작하는 남자의 모습조차 담아 내지 않았다. 남자의 일상은 단출하다. 일하고 간병하고 그러는 사이 그는 스스로가 기댈 구석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힘겨워 한다.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환자 자신이 아니겠냐는 당연한 대답을 하고서도 쓸쓸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는 그는, 한 여자에겐 가장 큰 축복이 아니었을까 싶다.

 

 

제목으로 사용한 化粧과 火葬은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곳에 위치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다. 곱게 보이기 위해 원래 있던 곳에 아름답게 해준다는 물질을 덧붙이는 건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공히 필요한 것이며 핏덩이로 세상에 나왔다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 자기를 반 정도 닮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세월이 흘러 한 줌 재로 돌아가는 사이클이 인생의 바로미터가 아닌가 싶다. 처연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을 정도로 차분한 진행과 간신히 중심을 잡고 버텨냈던 한 중년 남자의 모습이 마치 이 시대 중년 남성들의 전형(典型)처럼 보였다.

 

 

두 여배우 김호정과 김규리 모두 속살을 드러내며 열연을 했지만 이 영화는 안성기가 아니었으면 통속 치정극에 그치고 말았을 것 같다. 이성을 대하는 눈빛이나 자신의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힘겨운 나날을 비슷한 시선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준 삶의 자세는 과연 그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쉽게 배우의 연기 변신을 운운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그가 지금까지 다른 영화를 통해 보여주었던 반듯한 이미지의 남성상이 왜곡되지 않고 받아들여졌다고 본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화장 (2015)

Revivre 
7.7
감독
임권택
출연
안성기, 김규리, 김호정, 전혜진, 연우진
정보
드라마 | 한국 | 94 분 | 2015-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