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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번 더 해피엔딩 - [리뷰] 원고지 바깥 세상도 좋은 소재

효준선생 2015. 4. 9. 07:30

 

 

 

 

 

 

 

작가들의 이미지란게 대개는 검은 뿥테 안경을 쓰고 노트북의 모니터를 노려보며 극강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자신이 느끼고 있는 모든 것을 자판을 통해 입력시키려 하는순간적인 몰입은 최고지만 상대적으로 세상에 떠다니는 잡다한 앎에 대해선 대해선 그다지 해박하지 않은 인물 정도로 그려볼 수 있겠다. 15년 전 작품 하나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지만 그 이후 그의 작가 생활은 생각보다 잘 피지 못했다. 영화 한 번 더 해피엔딩의 주인공 키스 마이클스의 이야기다. 그가 마음에도 없었던 어느 지방대학의 겸임강사로 가게 된 것도 후학의 꿈에 불타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저 쪼들리는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한 미봉책이었다.

 

 

한때는 잘나가는 작가였지만 아내와의 결별, 하나 있는 아들과도 만나지 못한 지 오래. 그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심지어 어렵사리 얻은 강사 자리도 설렁설렁 대충 때우는 식인지라 다른 교수들의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 급기야는 제자인 여학생과의 썸씽으로 윤리위에 회부될 위기에도 처하고 새로운 작품 계약 소식은 감감이고 더욱이 빙엄턴의 날씨는 왜 맨날 구질구질한 지 답답한 하루의 연속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못나가는 작가라도 저렇게만 생기면 인기는 저절로 따라 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도 곱게 늙은 휴 그랜트의 모습을 보며 진짜 저렇게 멋진 작가가 누가 있나 떠올려 보았다. 강의실을 메우고 있는 여학생들의 눈빛이 유난히 초롱초롱한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가 늘어 놓는 이야기들이 100% 진담이 아니라도 그냥 믿어주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휴 그랜트의 연기를 보면서, 그것이 의도적인 건지는 모르지만 성격이 드러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큰 키지만 약간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쉴 새 없이 얼굴 표정을 바꿔가며 손동작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잔뜩 경계할 때 나오는 표정과 몸짓들이다.

 

 

영화는 그의 그런 모습과 주인공의 상태가 잘 맞아 떨어진다. 궁지에 몰리기 직전인데다가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황, 게다가 전문적으로 교수능력을 갖춘 채 교단에 선 게 아니라 과거의 영예로 한 자리 차지한 것에 대한 약간의 자격지심 같은 것들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시나리오 작법을 강의하는데 그래서인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무척 많이 꺼낸다. 실존하는 배우들도 언급되고 단순히 글만 쓰는 소설가 아닌 제작에 까지 관여하는 시나리오 작가라는 점을 부각한다. 이 부분은 어쩌면 그에게 감독의 입김이 투영되어서가 아닌가 싶다. 실제로 연출을 맡은 마크 로렌스는 70년대 후반 빙엄턴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고 이 영화의 시나리오도 그의 머리에서 나온 바 있다. 그러니 키스의 캐릭터는 감독 스스로의 이야기라고 해도 무리는 아닌 듯 싶다.

 

            

 

현재의 일도 어물쩡 넘기려고 하는 그에게 세상 모두가 호의를 베풀지는 않을 것이다. 자꾸 다른 생각을 하고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조금씩 삐그덕거리기도 하지만 천성이 악한 것이 아닌지라 그를 도와 주려는 사람들의 호의도 영화를 따뜻하게 만드는 데 일조를 한다. 특히 최근 영화 위플래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낸 J.K 시몬스는 이 영화에서 딸들에게 애정을 듬뿍 주는 학과장으로 등장해 전혀 다른 이미지로 나온다. 그리고 학생들로 나오는 캐릭터들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매력을 보여주고 있어 보면서 저런 곳에서 강의를 한다면 하루하루가 새롭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에게 주어진 기회라는 건, 그가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서 준비했다기 보다 그가 살아오면서 만들어 놓은 인복의 결과라는 생각이 짙다이제 그는 언제든지 떠날 준비만 했던 빙엄턴이 아닌 새로운 인생을 도모할 가치가 있는 빙엄턴에서의 삶을 그려보려고 한다. 또 누가 알겠는가 교수로 살아가는 작가의 이야기가 그의 두 번째 히트작이 되어줄 지를. 작가라고 해서 원고지에서만 길을 찾으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확실히 부러운 인생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한 번 더 해피엔딩 (2015)

The Rewrite 
9.3
감독
마크 로렌스
출연
휴 그랜트, 마리사 토메이, 벨라 헤스코트, 스티븐 카플랜, J.K. 시몬스
정보
로맨스/멜로, 코미디 | 미국 | 107 분 | 2015-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