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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약장수 - [리뷰] 가족을 위하여 버티고 견디다

효준선생 2015. 4. 4. 07:30

 

 

 

 

 

 

 

 

젊은 시절엔 아무도 추레하게 늙어 버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상록수처럼 늘 푸르름만 가득할 것 같은 삶 속에서 시간의 나이테가 굵어지면서 어쩌면 나도…” 이런 생각에 미치면 박차를 가해 부지런히 돈도 모으려고 애를 쓰고 남들 처럼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하지만 세상 그 누구도 불로장생을 할 수는 없다. 비 비껴갈 수 없는 원칙 한 가운데에 서서 다가올 미래를 불안하게 기다리고 있는 어느 중년 남자의 웃음이 그렇게 서글프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소위 야메 물건을 그럴듯한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해 세상 물정에 어두운 노인들에게 비싼 값으로 파는 장사치들을 약장수라고 부른다. 칼만 안 들었지 도둑이나 마찬가지라고 침을 튀며 열변을 토하는 피해자들 역시 그들의 입 재간에 넘어간 뒤다. 옛말에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눈은 인체 기관 중 가장 먼저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데 감은 것도 아니고 뜬 상태로 눈 바로 아래 있는 코를 베인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싶었다. 그만큼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당했다는 말이다.

 

             

 

영화 약장수는 벼랑 끝에 몰린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사는 어느 중년 가장과 혼자 사는 한 노파의 이야기를 중첩시키며 신산하기만 한 그들의 삶의 한 페이지를 현실적으로 녹여낸 드라마다. 남자는 상황이 좋지 않다. 일정한 직업 없이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살고 대리기사도 해 보지만 손에 들어오는 돈도 별로 없다. 월세는 밀리고 특히 아픈 아이가 그의 마음을 더 조인다. 가장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함에 자책하며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약장수’. 노인들 앞에서 괴상한 옷을 입고 혹은 벌거벗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마음에도 없는 엄마소리를 해댄다. 그 일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이 병원비라도 대라면 살인 빼고는 다 해야 할 판이니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오는 길에 우연인지 혼자 사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식들과 떨어져 혼자 사는 노인들, 나이가 여든이 넘은 그들이 별다른 재산없이 근근이 버티며 산다는 내용인데 보고 온 영화 약장수의 옥님엄마의 처지가 무척이나 닮은 듯 했다. 옥님엄마로 대표되는 지금의 노인들에게 빈한한 경제력과 외로움, 그리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병마와 그리고 사신과의 조우가 두렵기만 한 당면과제들이다. 제 아무리 정부나 나서서 노인 복지를 외쳐보지만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밖에 없고 그들이 자신들의 바로 윗 세대에게 해왔던 효도를 자식들로부터 받기는커녕 부담으로 여기는 오늘, 그들이 감내하는 고통은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렇게 두 사람에게 교집합이 생긴 부분에서 조금 이질적인 면을 발견하게 된다. 옥님엄마에겐 번듯한 자식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을 정도로 노년을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식 하나가 어린 시절 커가는 모습이 지금에 와서는 못내 부담이 되는 것이다. 바로 자기 때문이다. 불편을 내색하지 않는 것, 아파도 그러려니 하는 것. 그녀가 치료비까지 빼다가 약값으로 치렀던 장면은 남자에게 또 하나의 아들은 본 이유에서다. 하지만 남자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진심으로 그녀를 엄마라고 여겨 그렇게 부르고 따랐던 걸까 정확하지 않지만 그 개미굴 같았던 약파는 곳에서 그 역시 빠져 나오기 위해 여러 노인들 중의 한 명의 환심을 사기 위한 본능은 아니었을까

 

 

작은 강당에 노인들이 모여 노래하고 흥에 겨워 율동도 해보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결국 물건 강매와 빚뿐이라는 걸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장이 다그치듯 노인들을 몰아세웠음에도 다음에 또 다시 강당을 가득 채운 노인들을 보며 친 자식과 혹은 사회가 해주지 못하는 위안을 얻기 위해, 그들은 비록 약장수인 걸 알면서도 기댈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참으로 기가 막혔다. 누군가는 그런 말도 할 것이다. 공짜 선물을 받기 위해 몰려 갔다가 정작 물건 사라고 하니 아무도 안사는 건 그들도 잘못이라고. 반대로 셈이 흐린 노인들을 대상으로 바가지 영업을 하는 그들이 천벌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고. 하지만 중요한 건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임을 알면서도 다가갈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를 제대로 풀어줄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약장수가 불법이기에 한 번쯤은 공권력이 개입되거나 뭔가 뒤집어 지는 일이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범죄 영화가 아니다. 누군가는 세상을 하직하면서도 끝내 자신이 안고 있던 아픔을 풀지 못한 반면, 아이러니 하게도 그를 제외한 나머지 사회구성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흘러가며 살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이 영화의 엔딩을 장식했던 그 긴 춤사위가 녹록하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친서민의 이미지에 딱 맞는 김인권과 쓸쓸한 노년을 연기한 이주실의 핍진한 연기 못지 않게 정말 악랄하면서도 그럴 이유도 가진 사장 역할의 박철민이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다. 늘 기지가 돋보이는 말투로 주로 해학적 캐릭터를 도맡았던 그가 이 영화에선 캐릭터의 강약을 조율하면서도 지금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만성 질환을 마치 대변이라도 하듯 차진 대사와 얼굴 표정 등으로 잘 구사해냈다. 별 반 개는 그의 몫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약장수 (2015)

9.2
감독
조치언
출연
김인권, 박철민, 이주실, 최재환
정보
드라마 | 한국 | 104 분 | 2015-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