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장수상회 - [리뷰] 내 사랑은 당신을 기억하는 날까지

효준선생 2015. 3. 31. 07:30

 

 

 

 

 

* 씨네필 소울이 뽑은 4월의 추천작

 

 

 

 

청춘들을 향해 시선이 집중되는 요즘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노년들에겐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새록새록 떠올라 뭐라고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하고 있다. 섣불리 말을 걸었다가는 성장의 과실은 다 따먹고 나서 이제 말라붙은 나뭇가지를 꺾어 건네주고 다시 키우라는 거냐고 지청구나 들을 것이 틀림없어 보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단 한번도 힘들지 않았던 때가 없었고 이제 인생의 뒤안길을 준비하려다 보니 문득 떠오르지 않는 몇 가지가 생겼다. 바로 사랑했던 기억들이다.

 

 

작년에는 노년층의 이야기를 다룬 외화들이 다양한 장르로 유난히 많이 개봉되었다. 대개는 경제적인 여유를 가진, 그러면서도 어딘가 괴팍한 성격을 가진 노인들이 주변인물과 소통하고 화해해 간다는 훈훈한 드라마를 소재한 영화들이었다. 그것에 반해 한국영화에선 본격적인 노년층 소재의 영화들이 많지 않은 편이다. 마케팅 측면에서의 문제라기 보다 쉽사리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통시적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이다. 한 개인의 회고록을 단 두 시간에 일괄 요약해내고 그걸 영화적 재미로 꾸며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에 반주 정도로 그의 윗 세대들의 다소 주책맞은 사랑 이야기로 구색 맞추기 정도에 불과했거나 혹은 여전히 젊은 티가 나는 배우들로 하여금 어색한 노인 연기를 하도록 해서 오도가도 못하게 하곤 해왔다.

 

 

영화 장수상회는 제목과 포스터에 등장한 박근형과 윤여정, 두 베테랑 배우들의 면면만 봐서 이게 황혼 로맨스를 다룬 영화인가 싶을 텐데 그보다는 좀더 감성적인 가족 로맨스라고 부르는 편이 어울릴 것 같았다. 서울 강북 수유동에 자리한 장수마트에서 일하는 김성칠은 단독주택에서 홀로 여생을 보낸다. 이웃에 이사온 참한 할머니 금님여사에게 관심이 가지만 무뚝뚝하기로는 소문난 그의 성격상 두 사람의 로맨스는 쉽게 진도를 빼지 못한다. 두 사람은 각자 과거의 일을 잊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까

 

 

연출을 맡은 강제규 감독은 단편영화인 전작 민우씨 오는 날(2014, 고수, 문채원)을 통해 이 영화의 폭을 확장시키기 위한 예열을 한 듯싶었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흐름, 그리고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음악과 화면 전환 장치들이 무척이나 흡사해 보인다. 장편으로 전환시킨 가장 큰 영역은 역시 주변인물들과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것들이 흔하다면 흔한 가족들의 이야기들이다. 그들이 주인공의 인생에 어떻게 개입해왔고 그걸 한참 동안 베일에 감싸둔 채 이야기를 미스터리한 방향으로 흘려 보낸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중반부부터 디테일한 장면을 통해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둔감한 편인 내 경우엔 막판에 와서 눈물을 쏟을 수 밖에 없는 설정에 홀랑 넘어간 셈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전형적인 신파의 틀에 넣고 폄하해야 하냐 한다면 그건 아니다. 모두에 언급한 것처럼 이 영화는 오래된 것에 대한 우리들의 시선에 자극을 준다. 그 부분은 낙후된 마을을 재개발이라는 방식으로 새롭게 뜯어 고치는 부분에서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일종의 장난 같은 기획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폭력적이거나 막무가내 식은 아닌지라 영화의 핵심엔 재개발에 대한 찬반을 묻는 낯 뜨거운 사회적 메시지 보다 오래된 사랑을 지킬 수 있는 지에 대해 비교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즈음에 오면 사랑의 유효기간을 따지는 건가 싶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라는 상투적인 주례사에도 들떠 있던 때를 상기한다면,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하여 혼인 신고서의 도장이 마르기도 전에 돌아서 버리는 젊은 사랑들 앞에서 이 두 사람이 풀어 놓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어찌나 의미심장한 것인지 그제서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면 영화를 보는 내내 좀 애매하다고 생각한 부분의 궁금증을 풀어주려고 애를 쓴다. 그제서야 사랑의 한 복판에 서 있었던 것은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음을 깨닫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거개는 손수건을 꺼내 흘러 내리는 눈물을 닦고 있다.  사랑에 대한 기억처럼 인간에게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 속의 서랍에 그 사랑을 감춰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살며시 꺼내보는 사랑, 일순간 그 서랍의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황망해했던 일로 이제 나이 듦을 한탄해 하지는 않았던가 

 

 

서로의 이름을 확인하며 시작된 사랑이 이제 와선 그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으니 그 또한 이 세상에 와서 살다 어른이 되어 만난 자신의 운명 같은 사랑을 곁에 두고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선물이 아닌가 싶다. 부르다 산산이 흩어진 이름이 되어도 좋을 그 이름을 당신은 어디쯤에 두고 있는지. 이 영화는 오래된 것의 소중함을 재확인하는 계기를 부여한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장수상회 (2015)

Salut D’Amour 
9.4
감독
강제규
출연
박근형, 윤여정, 조진웅, 한지민, 황우슬혜
정보
가족 | 한국 | 112 분 | 2015-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