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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채피 - [리뷰] 로봇도 정을 준 만큼 자란다

효준선생 2015. 3. 14. 07:30

 

 

 

 

 

인간에게 인간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로봇을 만들어 내는 건 어쩌면 우주의 신비를 알아내는 것만큼 가치 있는 것이다. 개별적인 연구 등으로 로봇의 진화는 이미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고 실용화 단계를 앞두고 주저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로봇으로 인해 인간이 가꿔 놓은 삶의 질서와 원칙들이 파괴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지만 과학 기술의 발전은 조만간 그 불가사의한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 것이 분명해 보인다.

 

 

2009년 영화 디스트릭트92013년 영화 엘리시움을 통해 지구의 주인으로 자처하는 인간들이 조우하게 될 상상력의 세상을 맛보게 해준 닐 블롬캠프에게 영화 채피의 구현은 생각보다 오랜 세월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이제 그 결실이 우리 눈 앞에 다가왔다. 남 아프리카 공화국의 명암이 여실히 담겨있고 그 사람이 사는 공간에다 집어 넣은 로봇 채피, 겉모습은 깡통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한때는 로봇 캅 같은 경찰 역할을 수행해냈다. 로봇의 수요는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자들을 유효하게 제압하기 위해 투입되는 용도에서 비롯한다. 설사 파괴된다고 해도 인명의 살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인지라 미래 사회의 그들의 역할은 날로 증가할 수 밖에 없었다. 로봇은 스스로 진화할 수 없다고 전제해 왔다. 특히 과학자들의 주관이 개입될 소지가 크고 만들면 만들어진 용도와 목적에 맞는 활동만 해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만약 로봇이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고 스스로 지식을 터득해 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이런 로봇의 매커니즘의 급격한 발달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엔 분명 로봇을 만드는 기술자가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 로봇 채피를 만든 자는 젊은 기술자다. 그러나 그의 시도가 마냥 호응을 받는 건 아니다. 회사의 일원으로 연구 개발해서 만들어낸 로봇이 천재적인 학습 능력을 갖고 있다면 그건 회사의 이익이라 할 수 있음에도 그에겐 그런 사치스러운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동네 깡패들에게 납치되어 그들 방식 대로 성장해 가는 채피의 모습을 보며 이 영화는 교육, 정확하게는 훈육의 정당성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된다. 말이 서투른 채피에게 욕부터 가르치고 도둑질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게 한다는 설정등. 인간의 케이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앵벌이로 시작해 목숨의 위협까지 받은 채피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인간과의 만남에서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건 슬프게도 그래도 다시 한 번이라는 외통수 선택이었다. 자신이 티타늄으로 만들어져 영생불사할 것이라는 착각과 기껏 몇 일 동안의 밧데리 수명이 끝나면 쓸모 없어진다는 사실에 자학모드로 돌아서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상대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있는 기술자와 로봇 채피에게 그렇게 냉대하지는 않았다.

 

 

채피가 동네 양아치들에게 엄마, 아빠라 부르며 따르고 자신의 괴롭히는 부류들에게 비폭력 저항으로 일관하는 처음 부분에선 저게 인간의 본성일까 싶기도 하고, 인간을 전혀 닮지 않은 비정형성의 로봇과 한판 전을 벌이는 장면에서는 당연히 그를 응원하게 만들었다. 생명은 유한하지만 그걸 확장시킬 수 있다고 본 감독의 철학은 인간의 몸은 정신을 지배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전작들보다 강렬하게 인본주의 사상을 투입해 놓은 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채피는 로봇인지 인간의 현신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그게 채피에게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인 셈이다.

 

 

채피와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다른 캐릭터의 로봇 무스는 규모의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괴물이다. 막대한 자본이 투하되고 막상 쓸모가 없다는 현실에 비견되는 일들은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도 그런 로봇이 존재해야 거기에 기대어 사는 무리들이 살 수 있다는 역설 때문이다.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소규모 대량 생산이 가능한 채피와 하나 만들기에도 무리가 따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무스의 대비가 그 자체로 경제원론을 보는 것 같다.

 

 

로봇들이 강력한 주인공 포스를 자랑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인간의 심성을 이야기 한다. 인간의 정신과 로봇의 육체가 결합되었을 때의 폭발력은 현실에선 인류가 단 한번도 가져 보지 못한 처녀지고 그걸 마주해야 하는 또 누군가 역시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로봇을 만드는 일을 소수의 기술자나 과학자의 소임이라고 몰아 넣기에 로봇의 일상화는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처럼 인간과 로봇이 교감을 이루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시점도 어쩌면 이미 도래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저 인간의 편의를 존재했던 로봇이라는 대상을 또 하나의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좀 무섭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감독은 이제 남아공을 배경으로 한 3편의 영화를 통해 남아공이 갖고 있는 현실의 문제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관이 별개의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다분하고 그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강렬하게 받게 된다. 채피는 그런 사유에 일조하게 만든다.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 샬토 코플리는 영화에서 그의 실물을 손톱만큼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가 가진 매력은 이미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이 또한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겉과 속의 묘한 대비가 아니었나 싶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채피 (2015)

Chappie 
7.5
감독
닐 블롬캠프
출연
휴 잭맨, 샬토 코플리, 시고니 위버, 데브 파텔, 닌자
정보
액션, 스릴러 | 미국, 멕시코 | 120 분 | 2015-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