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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 - [리뷰] 세프는 언제 행복할까?

효준선생 2015. 3. 12. 07:30

 

 

 

 

이른바 셰프들의 전성시대. 드라마에서나 가끔 등장하는 전문직 그들이 최근엔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나와 그들만의 손맛을 보여주는데 여념이 없다. 각자가 오너 셰프거나 수석 주방장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요리 솜씨 못지 않은 캐릭터를 구축하는데는 역시 미식이라는,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인 욕구를 제대로 자극하고 있기에 그런 호황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먹고 사는 것만큼 1차원적인 욕구가 또 있을까 부자도, 가난뱅이도 배를 주리고 살 수는 없으니 현실에서 접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요리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시선을 강탈당할 용의가 있는 셈이다. 거리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쿡방, 먹방에 빠져 있는 사이, 국가의 최고 권력들의 식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입맛이 까다로운 미식가로 유명했다고 한다. 시골에서 송로버섯을 재배하던 오르탕스 여사가 엘리제 궁으로 들어가 대통령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게 된 것도 대통령의 사적 취향을 고려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소위 대통령 궁이라면 수 많은 식솔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이 먹는 것들도 산해진미가 따로 없을 텐데 그들을 위한 메인 주방이 아닌 대통령 한 사람만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 일은 생각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조선시대로 치면 소주방(燒廚房) 마님, 즉 잘 알려진 대장금을 떠올릴 수 있을 텐데 오르탕스 여사가 바로 그 역할을 해낸다.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는 실존했던 인물의 2년 여의 시간, 그리고 그곳을 나온 뒤 남극 기지에서 만인을 위해 요리를 하던 그 후의 모습을 오버랩하며 그녀의 일상을 조명한다.

 

 

겉으로 보기엔 고급스러운 프랑스 요리들의 향연이지만 이 영화는 그보다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아쉬움을 많이 토로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외부에서 온 요리사가 자신들이 서브하는 최고위직 인사의 식사를 도맡겠다고 했을 때 시샘도 나고 못마땅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메인 주방 사람들과 오르탕스 여사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인간적인 마찰은 충분히 예상이 되는 부분이었다. 반대로 자신이 만들어 준 음식을 지상최대의 음식이라고 여기며 맛있게 먹어주며 자신의 부재를 진심으로 섭섭해 하는 남극기지 요원들의 함성과 박수소리는 그녀에게 요리사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하는데 충분하지 않았을까

 

 

만인지상의 식사는 외로워 보인다. 프랑스에서 최고가는 식자재로 최고의 요리 솜씨로 만들어낸 것이라 하지만 그걸 맛나게 먹는 장면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비서관들을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시스템을 바꾼다고 메뉴를 미리 뽑아달라고 하거나 식자재 비용을 허투로 썼다고 핀잔을 들어야 하고 메인 주방과의 신경전도 무시 못할 수준이다. 심지어 대통령의 건강을 위한답시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의사들이 와서 소스까지 간섭하는 분위기에서 무슨 정성 어린 음식이 만들어지겠는가.

 

 

영화에서 역경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대통령 자신이 역경을 이겨내는 것이 스스로를 유지하는 방법이라 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에게 역경이란 어떤 상황을 말하는 것일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간혹 그 자리가 너무나도 불편해 견딜 수 없을 때도 있다. 세계의 3대 요리재료라고 하는 송로버섯을 재배하기 위해 세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그녀의 모습이 오히려 행복해 보였다면 과장이었을까.

 

 

어느 날 대통령이 수행인원 없이 불 꺼진 주방으로 내려와 거친 빵 조각에 송로버섯 슬라이스 얹은 걸 먹는 장면이 나왔다. 성찬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그 두 사람에겐 확실히 교감이 있었을 것 같다. 비록 그 두 사람만의 것이긴 하지만. 그런데 묘하게도 그 장면을 보니 예전 전직 대통령이 라면이 먹고 싶어 슬며시 주방을 찾아와 끓여달라고 했다던 일화가 떠올랐다. 먹고 사는 문제는 확실히 인간적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엘리제궁의 요리사 (2015)

Haute Cuisine 
10
감독
크리스티앙 뱅상
출연
카트린 프로, 아르튀르 뒤퐁, 장 도르메송, 이뽈리뜨 지라르도, 장-마크 루로트
정보
코미디 | 프랑스 | 90 분 | 201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