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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플래쉬 - [리뷰] 나의 경쟁자는 나 일뿐이다

효준선생 2015. 3. 9. 07:30

 

 

 

 

  어떤 영화? 젊은 드러머가 스스로를 극복하는 과정을 독기있게 풀어내다 

 

 

 

남들보다 잘 해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아야 한다. 능가를 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마는 살벌한 시대. 그 극명한 예시가 되어 준 영화 위플래쉬는 최고의 엑스타시를 향해 한없이 치닫는다.

 

 

여러 가지 악기 중에서 단 하나 선택해서 배울 기회가 생긴다면 아마 드럼 같은 타악기를 고를 것 같다. 무엇보다 리듬과 원시시대부터 인류의 DNA에 박혀 있을 법한 타악기에 대한 이유 없는 끌림 따위 때문이다. 하지만 합주에서의 드럼 연주는 혼자 놀아서는 안될 일이다. 그럼에도 주목 받을 수 있는 건 드럼이 주는 둔탁하면서도 예리한 음감이 아닐까 싶다. 얼핏 봐서는 섬세함보다 힘으로 두드리는 것이란 이미지가 강하지만 손가락 끝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근육과 뼈마디를 미세하게 조율하지 않고서는 좋은 음을 만들어낼 수 없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앤드류 네이먼은 이제 음악학교 1학년으로 19세로 설정되었다. 그 바닥에서 최고의 스파르타 조련사로 악명을 떨치는 테렌스의 눈에 들어 재즈 스튜디오 밴드에 합류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양탄자 깔린 성공가도가 아닌 치열한 경쟁과 인격모독에 가까운 테렌스의 훈육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유심히 보다 보니 유명한 야구 감독이 떠올랐다. 선수 하나를 찍으면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스윙연습을 시키고 유니폼이 낡아 헤질 정도로 펑고를 받게 한다는, 그런 탓에 몇몇 선수들과 팬들은 그를 승리만 아는 비정한 사람이라고도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무명 선수들은 오히려 그를 찾게 된다는 만화 같은 이야기들. 과연 테렌스도 그런 코치였을까 무엇을 위해 다른 사람들은 경원시 하는 그런 코칭을 하는 것일까

 

 

이 영화는 물론 약관의 드러머 앤드류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를 노련하게 조련시키는 테렌스가 없다면 영화 자체가 의미가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앤드류가 만약 자기의 재주에 일찌감치 만족했다면 과연 그의 실력은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을까 그건 일개 드러머 만의 문제가 아니다. 각자가 잘한다고, 그걸로 밥벌이를 한다고 느긋해 하고 만족해 하지만 그런 수준은 또 누구라도 갖고 있는 그런 거라고. 미안한 얘기지만 세상엔 일도 많지만 그걸 자기처럼 하고 있는 사람은 더 많다고. 테렌스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차피 경쟁이 없어서는 타인을 능가할 수도 없고 평가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그나마 자기 이름 석자 남길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화 중반에 이미 성공이라는 두 글자에 매몰되어 친척에게도 또 여자친구에게도 매정한 소리를 쏟아 내는 앤드류를 보면서 인간의 본성을 조금 엿보게 된다.

 

 

그가 드러머가 아니라 발명가였다면, 어쩌면 우린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기가 막힌 가전 제품을 사용할 지도 모르겠다. 그가 뛰어나 의사였다면 더 이상 불치병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을 지 모른다. 인류의 발달엔 극 소수의 저런 인물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라면 과장된 말일까 그럼을 치다가 분에 못 이겨 주먹으로 드럼을 박살내고 스틱 때문에 손 마디에서 피가 나는 걸 보니 앤드류는 애초 될 놈이었는 지 모른다. 그리고 날개를 달아준 멘토를 만난 것이고.

 

 

하지만 테렌스의 코칭에 모두가 만족할 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특히 요즘같은 세상엔 잘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말 자체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둥, 몇 번은 흔들려야 청춘이라는 둥의 퇴행적이고 무책임한 격려가 마치 세대의 메시지인 듯 하는 세상에선 잘 통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어지지 않는 기회를 탓하기 보다 스스로가 깨치고 만들어가는 모습 속에서 그것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굉장한 일이 아니겠는가.

 

 

영화에선 찰리 파커라는 유명한 재즈 색소폰 연주자의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 그를 롤 모델로 삼는 건 그가 가지고 있던 원래의 재주에다 그가 그의 이름 석자를 세상에 새길 정도의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따낼 수 있었던 에피소드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도 앤드류를 향해 이런 저런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넣었다. 그것이 좀 심하게 보일 수도, 혹은 그 반대로 저 정도 가지고 모티베이션이 되겠나 싶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잠시 쉬었을 뿐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뒤 돌아간다면 그는 영원히 길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로 카펫을 깔아 줄 사람도 없고 꽃 길도 없다. 걷고 또 걷다 보면 그게 길이 될 것이다. 당신의 롤 모델이 그랬듯이. 엔딩을 화려한게 장식한 드럼 스틱의 절묘한 움직임과 귓 속을 가득 채워줄 재즈 넘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씨네필 소울이 선정한 3월의 영화 추천작

 

 

 

 

 

 


위플래쉬 (2015)

Whiplash 
9.2
감독
데미언 차젤
출연
마일스 텔러, J.K. 시몬스, 폴 라이저, 멜리사 비노이스트, 오스틴 스토웰
정보
드라마 | 미국 | 106 분 | 2015-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