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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 - [리뷰] 청춘을 지배했던 추억, 야구

효준선생 2015. 3. 5. 07:30

 

 

 

 

  어떤 영화?  재일동포 야구인의 인생과 추억, 그리고 젊은 시절 

 

 

 

동대문 야구장을 처음 찾은 건 우연이었다. 청계천 헌 책방을 둘러보다 얼떨결에 발견한 거대한 시설물, 마침 그곳에선 한 여름을 뜨겁게 달구던 봉황대기 전국 고고야구 대회가 한창이었고 어린 학생이던 난 아주 저렴한 입장료를 내고 경기 도중에 들어갔다. 당시는 프로야구가 등장하기 직전이었지만 학생 야구의 인기가 최고였던 지라 야구장엔 뙤약볕을 마다하지 않은 관객들로 가득했다. 난생 처음 야구장을 접한 그날 외야석에서 어슬렁거리던 난 맨 빵에 소시지 하나를 넣어 팔던 핫도그 하나와 그 경기가 서울고와 대구 성광고의 시합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태 뒤 출범한 프로야구의 열성 팬이 되는데 이날의 기억은 분명 도움이 되었다.

 

 

세상의 그 어떤 스포츠 종목 보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특출하게 잘하는 스트라이커 한 명을 중심으로 공을 차는 축구보다 여러 면에서 못한 실력임에도 아주 공평하게 타격 기회가 무려 9명에게 주어지는 야구, 다양한 경우의 수와 마치 게임을 즐기는 듯한 판세 읽기가 개인의 취향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가 첫 선을 보였을 때부터 시시콜콜한 선수 정보까지 꿰뚫던 까까머리 중학생에게 그보다 재미있는 건 없었다. 응원하던 팀이 승승장구했던 것도 어린 팬 심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그 프로야구가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학생 야구와 실업 야구의 이면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선수들이 있었다. 바로 바다건너에서 온 재일교포 야구선수들이었다.

 

                       

 

프로야구가 등장하고도 고교야구의 열기는 한동안 식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역 프랜차이즈 제도를 운영해 고교 유망주들은 바로 그 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팀으로 직행했기에 어느 선수가 미래의 스타 선수가 될까 점치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응원 팀이 있던 지역 고교팀을 응원하게 마련인데 봉황대기의 경우, 지역 팀이 나오는 경기가 많아서 좋았다. 그런데 그 많은 팀 중에 유독 눈에 띤 팀이 있었는데 바로 재일동포라는 한자를 가슴팍에 새기고 나온 팀이었다. 그들이 바다 건너 한국 고교 야구대회까지 출전하게 되었는지 이상하지는 않았다. 당시 프로야구 팀에는 정책적으로 재일 교포 출신 야구 선수들이 1,2명 씩 뛰고 있었고 당시 한 수 높은 기량으로 한국 프로야구의 실력을 높여놓은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재일동포 고교팀 선수 중에 나중에 한국 프로야구 팀에 입단한 선수 소식은 듣지 못했다. 과연 그들은 어디로 간 걸까? 97년이후 외환 위기로 인해 더 이상 그들의 모습은 한국에선 볼 수 없었다. 수 십 년간 이어졌던 그들의 방문이 끊어졌고 이젠 그들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는 이때 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잠시 잊고 있던 그들을, 아니 더 정확하게는 나의 청춘 초입 시절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 영화는 8년 전 재일 동포 학생들의 생활을 입체적으로 담은 영화 우리 학교의 감독 김명준의 후속작이다. 이번 영화도 오사카를 중심으로 잘 살고 있던 82년 출전 멤버들을 하나 둘씩 찾아내고 지난 세월 그들의 삶과 그 날의 추억을 불러냈다. 이미 나이 쉰을 앞둔 그들에게서 왕년의 야구 선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건 쉽지 않았다. 여전히 자이니치라는 차별적 대우를 묵묵히 받아들이며 살고 있던 그들이 처음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연출자와 스탭들과 호흡을 맞춰가는 모습이 마치 세월을 이겨내기 위해 애를 쓰는 비슷한 또래의 중년들의 회고담 같아 보였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 한 켠이 얼얼했다.

 

 

일본에선 조센징으로, 한국에 오면 반쪽발이라는 비칭이 서러울 법도 하지만 그들에겐 그것 때문에 한숨만 쉬고 있어야 하는 나약함 따위는 사치였다. 척박하지만 살아야 했고 야구를 했던 학생 시절의 추억은 이제 그날의 멤버들을 다시 만나며 승화되었다. 청춘은 누구에 의해 강요된다고 빛을 발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기억 속에서 각자의 의미와 가치로 각인되어 있을테고 그것들이 언제 어디선가 자극이 될 때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내겐 이 영화가 그런 역할을 했고 그들은 다시 한 번 한국에 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이 그런 역할을 했다.

 

 

 

그들이 재 작년 무려 30년이나 지나 다시 잠실 야구장에 서서 시구와 시타를 했던 장면은 정말 뭉클했다. 다시는 그곳에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보다 이젠 기억해 줄 사람도 없는 자신들을 한국 야구팬들이 예전처럼 야유하지나 않았을까 걱정한다는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잠시 잊었을 뿐 아직도 잘 기억하는 그들의 이름과 플레이들을. 그리고 그게 바로 나 자신의 청춘 시절이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기억엔 OB 베어즈와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코치로 있었던 배수찬이라는 야구인에 대한 조명이 눈길을 끈다. 그 역시 82년 멤버의 재일동포 선배 격으로 70년대 한국에 와서 야구선수로 활약하다 빨갱이 색출이라는 당시 군사 독재정권의 획책과 고문에 못 이겨 비운에 간 사연을 별도의 챕터로 담아 놓았다. 82년 멤버들이 한국에 왔던 그 해(1982) 박정희 무덤(영화에선 그렇게 이야기 된다)에 넙죽 엎드려 참배를 하던 모습과 기이하게 오버랩 된다. 모쪼록 모두의 건승을 빈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 씨네필 소울이 뽑은 3월의 영화 추천작

 

 

 

 

 


그라운드의 이방인 (2015)

Strangers on the Field 
10
감독
김명준
출연
김명준, 조은성, 리키타케 토시유키, 김근, 양시철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103 분 | 201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