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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순수의 시대 - [리뷰]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하다

효준선생 2015. 2. 25. 07:30

 

 

 

 

 

  어떤 영화?  팜므파탈이 짜놓은 덫에 걸려들다  

 

 

 

남자의 순정이 한 여자의 복수극에 의해 지워질 지 모르는 순간,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가보자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준비를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국의 최고 군사(軍師)가 되어 왕의 신임이 돈독한 지금 그저 자신의 어미와 춤사위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럴 수 있을까 그리고 여전히 여자의 진심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상황에서 남자의 행동을 치정으로 몰아갈 개연성도 높다. 하지만 영화 순수의 시대의 김민재는 그런 이유만으로 선택한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순혈이 아니라는 콤플렉스, 장인과 아내 사이에 끼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을 받는 순간, 그는 도피처가 필요했을 것이며 그건 자신이 쌓아 놓은 공로와 맞바꿀 수도 있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아픔이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그녀, 가희가 나타났을 때 이미 시작된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은 그 사람이 처해 있는 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특히 전제군주 시절인 조선시기에는. 그래서 벼슬아치라 했다. 이 영화엔 자신의 것으로 화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이 꽤 있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싶은 태조 이성계와 정실의 자식임에도 어린 이복형제에 밀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태종 이방원, 거기에 왕도정치를 하고 싶어하는 정도전과 그를 못마땅해 하는 반대 세력들. 나라가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모든 것엔 먼저 깃발을 꽂는 자가 주인이 되는 도리이건만 반대로 민초들의 삶은 이전 왕조나 새로운 왕조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시작은 가난한 집 여식이 제 어미의 억울한 죽음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들여 복수에 나서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그게 찻잔 속의 태풍에서 그치지 않고 최고 권력 세력들의 안위까지도 좌지우지 하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물론 정도전의 사위로 나오는 김민재나 그의 아들이자 이성계의 부마로 나오는 김진등은 모두 가상의 인물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들의 관계가 범상치 않다. 한 여자를 둘러싼 그들 서로간의 밀고 당기는 관계 속에 본인들은 알 수 없는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진부한 복수극의 전형에서 탈피하기 위해 마련된 부분은 실제 존재했던 이방원의 야심만만한 정치적 한 수가 곁들여져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주목하고 싶었던 건 순수함과 동시에 남정네를 홀릴 만한 미색을 갖춘 예기(藝妓)로서의 다중적 캐릭터를 선보인 강한나라는 신인 여배우의 모습이었다. 상당한 수준의 노출신과 서로 다른 파트너와의 감정교환이 쉽지 않았을 텐데 특히 뒤로 갈수록 안정된 연기를 펼쳐 보인다. 흔히 사극에서 세간의 주목을 끌 정도의 노출을 하게 되면 거기에 따르는 피로감이 수반될 것임을 알았을텐데 그녀가 보여주는 각기 다른 상황에서의 표정연기가 제법이다. 특히 자신을 진정으로 대해주는 남자와의 첫 번째 정사 장면에서의 그녀의 표정은 절정이다.

 

 

사극이다 보니 배우들의 옷차림과 톤 앤 매너가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푸른 색 계열의 옷을 입은 김민재와 붉은 계열의 옷을 주로 입은 이방원, 그리고 흰 계열의 옷을 입은 가희의 옷차림이 각각의 캐릭터가 지향하는 점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마치 바랜 듯한 컬러 톤이 어둡게 보일 정도의 도입 부분을 지나 조금씩 밝은 톤으로 변화해가며 극 흐름을 조율해낸 연출력도 돋보인다. 실제 인물들을 삽입해가며 가상의 이야기를 안정적으로 만들어내는 솜씨가 두 시간 동안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비록 조선 초기의 이야기지만 오늘에 빗대어 이야기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사랑의 본질이 시대가 바뀌었다고 어디 쉽게 변하는 것인가.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순수의 시대 (2015)

8.5
감독
안상훈
출연
신하균, 장혁, 강한나, 강하늘, 이재용
정보
시대극 | 한국 | 113 분 | 2015-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