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기화 - [리뷰] 한 줌 먼지가 되다

효준선생 2015. 2. 11. 07:30

 

 

 

 

  어떤 영화?   가족에 대한 또 하나의 비창(悲唱), 로드무비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다 

 

 

 

여행은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늘 같은 공간에 갇혀 살면서 보거나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온 몸으로 부딪혀 느끼면서 전과는 새로운 감각을 충전할 수 있는 선택지다. 하지만 그 여행이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당장 내일이라도 훌쩍 떠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해도 막상 그 내일이 되면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와 겹쳐 주저 앉고 말게 된다. 여행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지만 쉽게 잡히지 않는 무생물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아는 형과 함께 먼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에겐 훌쩍이라는 말도, 내일이 오면 다른 일과 겹쳐 주저 앉는다는 말도 불필요하다. 4년이라는 세월을 과거의 잘못으로 영어의 몸으로 살았던, 아직 어린 아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 한번도 아버지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아버지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는 형을 끌어 들인 이유도 남극과 북극 마냥 멀리 떨어진 어색하기만 한 부자 사이의 접착제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을 것이다.

 

                       

 

작은 승합차로 이동하며 겪게 되는 이런 저런 에피소드들은 초반엔 코믹으로 중반엔 드라마로 후반엔 신파로 흘러간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이 마치 흘러간 어느 시점과 맞닿아 있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문정윤 감독은 배창호 감독을 흠모해왔다고 하면서 그의 영화의 일부분을 오마쥬했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배창호 감독의 85년 작 영화 고래사냥과 근사한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강변에서 벌어지는 전후 이야기들의 주조(主調)가 더욱 그래 보인다.

 

 

영화 제목으로 나오는 기화는 서너 가지 정도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남자의 아들 이름이고 후반에 등장하는 또 한 사람의 이름이기도 하다. 꽃이 핀다는 뜻도 있지만 연기처럼 변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 어떤 의미이든 영화 속에서 주된 설정은 연기처럼 변한다는 것에 방점이 있다. 이들이 돌아다니는 도중에 만나는 여자 아이의 이름은 연소다. ‘타다의 의미다. 그리고 짧은 시퀀스로 한 컷 등장하는 화장장의 그것도 연기로 변화하는 장면이다. 그건 육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 쓴 채 세상을 살다가는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통해 잠시나마 가족으로 사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부자 관계는 어떤 모양일까 알몸으로 강에서 헤엄을 치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자신의 성기를 아들에게 보여주는 장면에선 마치 이걸로 네가 만들어졌다는 걸 묘사하고 있고 티켓다방 아가씨를 아들과 엮어 주려고 하는 장면에선 의사(擬似) 며느리를 연상케 했다. 후반에 오기 전까지 청년 기화 엄마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 이상했는데 그 부분도 일그러진 가족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 손민지, 영화 그 강아지, 그 고양이의 주연 여배우였다. 쉽지 않은 역인데 그녀는 예뻤다.

 

한반도를 가로지르며 경기도에서 경상남도에 이르는 여정을 거치며 이들이 보여준 우당탕거리는 모습은 현실이 될 수도 있고 그 마무리엔 그래도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한 남자의 고뇌 같은 것도 읽힌다. 유명 배우는 없지만 연극무대와 독립영화계에선 알아주는 연기파 배우들이 여럿 등장해서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잘 채웠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흥행이 잘 될 수 있는 방법이 뭐 없나를 잠시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진정성이 느껴진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이 영화에 삽입된 김광석의 회귀가 참 좋다 -> 들어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RMVRyLr1ZzQ

 

 

 

 

 

 

 


기화 (2015)

Gi-Hwa 
10
감독
문정윤
출연
홍희용, 백승철, 김현준, 손민지
정보
가족 | 한국 | 127 분 | 2015-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