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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다 - [리뷰]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란 싯구처럼 처연하다

효준선생 2015. 2. 6. 07:30

 

 

 

 

  어떤 영화? 출생의 비밀, 소싯적 과오에 대한 각자의 회한과 각오가 교차하는 매혹의 흑백영화  

 

 

 

폴란드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지난 오랜 역사에 무수한 외침을 받아 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서쪽으로는 게르만이,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제 민족들이 충돌하는 정 중앙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2번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적지 않은 세월을 소비에트 위성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살았으며 그 시절 민초들의 삶 또한 무척이나 힘들었을 건 자명하다. 영화 이다를 보면서 저들의 역사적 배경이 어디선가 많이 봤다는 기분이 들었던 건 우리의 지난 역사도 이미 겪었기에 보이는 데쟈뷰 같은 것 때문이다.

 

 

천주교 서원을 앞두고 유일한 혈육인 이모 완다를 찾아간 이다. 고아로 수녀원 생활을 했기에 그녀는 이모로부터 들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듣고는 부모를 알고 있다는 사람을 만나 보기로 하고 먼 길을 떠난다. 난생 처음 만난 이모와의 여정이지만 이모를 통해 전해 들은 세상물정에 그녀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스쳐 지나는 경물에 한 눈이 팔린다. 마치 부모의 안위는 이미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주에서 벗어났음을 직감했던 것 같다.

 

 

영화는 60년대 공산당 치하를 다루고 있다. 자유화 운동의 물결도 한숨 꺾였지만 여전히 불안하기만 한 국내 정세, 사람 하나 죽고 나는 건 문제도 아니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온통 잿빛 배경이 전체적인 이야기를 압도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꼬물거리며 느리게 움직이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서서히 고조되며 폭발을 기다리는 4기통 자동차 엔진과 같다. 이모는 한때 서슬 퍼런 권력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판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때도 있었고 당시엔 그걸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건만 지금은 뭇 남정네들의 욕정을 받아내는 그런 여자로 살아야 하는 처지와 대비해 시대의 변화도 이미지화 한다.

 

 

반대로 어린 시절 수녀원 앞에 버려진 채로 수녀원에서만 살았던 이다는 순백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신을 모시기만 하며 세상 그 어떤 불의와 부정은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이 살았을 텐데 이렇게 이모와의 조우, 그리고 동행 끝에 알게 된 가족의 비밀로 인해 그녀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두 여자의 엇갈린 행보가 마치 다른 듯 비슷하게 수렴되는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결의에 찬 눈빛과 발걸음으로 부지런히 길을 떠나는 이다에게서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읽게 된다.

 

 

나라가 힘이 없어 외세에 의해 침탈 당하면 그 안을 채우고 사는 많은 국민들은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 당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그 피해의 일 순위에 선 사람들은 토종 폴란디쉬가 아니었다. 유대인들이었다. 그 곳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또는 나치독일에게 한바탕 곤욕을 치렀던 그들이 이젠 공산화된 나라에서조차 밀려나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잠시 등장하며 멋진 색서폰 연주를 보여준 훈남 역시 집시의 피를 가진 비주류였다. 이들의 삶의 궤적은 결국 보호받지 못한 수난의 역사를 대신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지구 어디에선가 비슷한 이유로 차별과 멸시를 받아가며 사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팁을 준 모양이다.

 

 

이 영화는 이미 수많은 국제 영화제에서 다양한 분야의 수상을 했다. 이 영화를 선정한 심사위원들의 마음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아무 권력도 가져보지 못한 자들에게 행해진 가시가 박힌 철퇴를 내려친 적이 있는 경험이 있던 한 사람에게 회한과 반성의 시간을 주고 싶었던 계기. 역사는 다시 반복되지 않는 다고 하지만 잊힌 역사는 언제든지 비슷한 양상으로 다시 재현되어 왔다. 아플수록 외면하지 말아야 할 텐데 이 영화가 한국의 소위 권력층들에게도 자성의 기회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