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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 - [리뷰] 딸은 엄마의 전철을 밟고 간다

효준선생 2015. 2. 5. 07:30

 

 

 

 

  어떤 영화? 일년 사계절로 구분해 일본 가정의 식(食) 문화를 디테일하게 보여주다 

 

 

 

삼시세끼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나로서는 서너 개의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도 단 한차례로 빼지 않고 챙겨보는 필견의 볼거리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가장 공감이 되는 부분은 그곳에선 경쟁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북적거리는 도심은 하루 삶 자체가 경쟁이다. 지하철에 올라 앉을 자리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 영화관에서 좋은 자리를 찜 하는 거 하며 남들이 다들 맛있다고 하는 맛집 찾아 돌아다니는 것 하며, 학생이라면 시험에 면접에 경쟁이 아니면 생활이 불가능한 정도다.

 

 

하지만 강원도의 어느 농촌, 전라도의 어느 어촌에서 혼자 살며 겪는 경쟁이라 봐야 얼마나 되겠나.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아무 것도 하기 싫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방송을 위해 수많은 스탭들이 화면 뒤에서 갖가지 서포터를 해준다고 궁시렁거리지만 그들이 없다면 그곳에서의 삶은 더욱 자연 친화적이 될 것이다. 만약 예상치 못한 자연으로부터의 압박이 거세다면 그건 경쟁이라는 단어 대신 자연에 대한 순응이라는 말이 더욱 잘 어울린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자연, 자연"을 외치는 건 사람은 자연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산골에 덩그러니 서 있는 일본식 가옥, 무슨 사연인지 다 큰 처자가 혼자서 살고 있다. 무서울 법도 하지만 오랫동안 그 집에서 살았는지 크게 무서워하지 않는다. 낮엔 논에 나가 벼를 돌보고 시간이 남으면 밭에 가서 구황작물과 푸성귀를 딴다. 그게 하루의 일과고 식사거리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쌀을 수확하는 건 일년을 준비하는 거고 푸성귀를 따는 건 한끼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좋다. 먹을 수 있고 손에 잡히는 거라면 그 물성을 헤아려 바로 먹거나 혹은 알고 있는 방식대로 저장을 한다. 물론 맛은 최고다. 남으면 이웃과도 나눠 먹기도 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은 최근에 불고 있는 웰빙 식 문화에 부합하는 최고의 프로그램이다. 영화지만 마치 리얼 다큐 프로그램을 보는 듯 생생하다. 아무래도 도시에서 살 것 같은 화려하고 이목구비 또렷한 여주인공의 미모를 제외하고 이 영화에서 소개되는 약 13개의 먹거리를 보면서 꿀꺽’, ‘옳지’,’맞아소리가 절로 난다. 일본 가정식의 재료들로 차려지는 한 끼 식사 장면에서 왜 그렇게 본능에 충실한 의성어들이 쏟아지는 지 모르겠다. 인간에게 먹는 건 기본중의 기본적 욕구일 테니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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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본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제작되었고 이번에 공개된 건 여름과 가을 편이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중간 부분이 이어지는 게 아니라 여름 편 엔딩 크리딧에 다 올라간 뒤 가을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혹여 여름 편만 보고 나가는 우를 저지르면 안 된다. 이야기의 구성 자체가 아예 여주인공 이츠코가 만들어 내는 요리들을 소개하는 일종의 챕터 형식이다. 첫 번째 요리인 호밀빵에서 시작해 가을 편 맨 마지막 요리인 푸성귀 무침에 이르기까지 맛의 향연이 따로 없다. 일본 식인지라 우리에겐 낯선 식재료도 있고 어릴 적엔 먹었지만 지금은 잊혀진 것들도 많았다. 그런데 그걸 보면서 지금 내가 먹고 배를 채우는 것들이 얼마나 비 자연적인 것인지 깨닫게 된다.

 

 

글로벌이라는 미명하에 원산지가 어딘 지도 모를 재료로 각종 화학 첨가제를 넣어 뒤범벅한 것을 먹고 살지 않는가. 먹을 땐 입이 즐겁지만 먹고 나면 어딘가 편치 않은, 그래 놓고도 잘 먹고 잘 산다고 스스로를 위로 하지 않았던가. 이 영화는 비단 일본의 한 젊은 여성이 만들어내는 신통방통한 요리를 구경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녀가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내는 요리를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을 재현해 내는 과정을 통해 딸이 엄마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걸 상기시켜준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시골에서 산다는 건 물론 힘든 일일 수 있다. 도시 생활의 편리함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면 일주일도 살 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언젠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미리 준비하고 연습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순리인 듯 싶다.

 

 

언제 겨울과 봄 편이 개봉될 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번에 공개되지 않아 궁금했던 그녀의 사생활도 들여다 보고 싶다. 제 아무리 오지 산골 마을이라도 저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은 남정네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이 영화는 기분 좋은 자극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2015)

Little Forest: Summer/Aut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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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모리 준이치
출연
하시모토 아이, 미우라 타카히로, 마츠오카 마유, 누쿠미즈 요이치, 키리시마 카렌
정보
드라마 | 일본 | 112 분 | 2015-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