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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라이브 - [리뷰] 잔혹했던 젊은 날의 초상

효준선생 2015. 2. 3. 07:30

 

 

 

 

어떤 영화? 폭력은 다시 폭력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몸짓, 손짓으로만 그려내다 

 

 

 

내레이션은 스크린에 투영되는 보이는 것과 함께 영화의 여러 구성 요소 중에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동안 드물게 전형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는 대사, 음악, 음향, 혹은 자막 등의 일부만으로 독특함을 내세운 영화들도 있었다. 21세기에 무성영화도 있었고 혹은 자막만 있는 영화도 있었다. 하지만 대사, 자막, 음악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 정말 특이한 영화가 등장했다. 영화 트라이브는 이 새로운 시도와 더불어 충격적인 내용으로 보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뇌리에 박힐 영화였다. 도대체 이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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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이나 자막은 없지만 그렇다고 줄거리도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배우들은 수화로 자신의 의견을 타진하고 상대방의 손짓을 보며 의사소통을 한다. 그대신 수화를 모르는 관객으로서는 그저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유추나 상상만 할 뿐이다. 그런데 본인이 지금 저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짐작했던 것이 그 다음 장면을 통해 맞았다 싶을 때의 쾌감이 장난 아니다. 마치 잿팍이 터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용은 기분 좋게 흘러가지 않는다. 바로 폭력과 거기서 탈출하고자 하는 젊은 녀석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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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을 온 녀석이 학교를 찾아가는 모습부터 나온다. 그리고 기숙사를 찾고 말을 하지 않지만 그 눅눅한 분위기는 이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처음부터 조율하기 시작한다. 패거리들에 의해 자기 방에서 쫒겨 나기도 하고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빼앗기기도 한다. 학원 폭력으로 보이지만 녀석이 패거리에 끼어드는 결정적인 순간은 소위 다구리를 당하는 순간이다. 질 수 없었는지 상대의 목을 깨물며 나름대로 인정받은 그는 하기 싫어도 그들과 어울려야 했다. 그래야 작아도 자기 몫을 챙기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학교 안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어른들 뺨치는 폭력을 그리고 있는 건 이 학교가 바로 사회에 준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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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을 하고 나오는 어른을 퍽치기 한다든지, 그것도 모자라 침대 열차칸에서 남의 돈을 훔치거나 몰매를 가하기도 한다. 그렇게 거둬들인 돈은 최상층에 있는 한 녀석에게 들어간다. 조직 폭력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안에서 겨우 숨을 붙이고 사는 녀석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마는 사건을 만난다. 아니, 그걸 사랑의 힘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트럭 운전수를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같은 학교 소녀들중의 한 명과의 성교, 그 이후 녀석은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린치가 가해져도 오로지 하나만 바라 본다. 그것이 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엔딩과 결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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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난무하고 도무지 학생의 짓으로 보이지 않는 행동을 일삼지만 어른들의, 특히 학교 선생들의 개입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방조한다는 느낌을 준다. 이 학교 선생들은 그저 기성세대들을 축약시켜 놓은 것에 불과하다. 아이들만의 세상이지만 그들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는 모양이다. 온통 아수라장 같은 그곳에서 벗어나는 건 흥미롭게도 이탈리아가 떠오른다. 이탈리아라는 문구가 박힌 셔츠 하나에 흥분하는 여학생의 모습이 의미심장하다. 이 영화는 우크라이나 영화인데, 그곳에서 보는 이탈리아는 우리에겐 아메리카 드림 정도가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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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만 흐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거친 장면들이 연이으며 폭력의 부정당성을 폭로하고 거기에 비루하게 빌붙어 살았던 녀석을 비롯해 성매매를 하는 두 여학생과 그녀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어른들의 모습들. 폭력이 다시 폭력을 낳는 악순환의 끝엔 생각했던 이상의 처참함으로 범벅된다. 그리고 그 사이 실제 청각장애자이자 연기 초보자들의 본능적인 의사 표현들이 결코 고분고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 몸동작이 하도 격정적인지라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어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라는 건 금방 알 수 있다.

 

 

폭력은 다시 거기에 대응하는 폭력을 낳고 그 폭력이 반복되다 보면 애초 폭력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무감각해진다. 남자 녀석들끼리의 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성매매, 낙태도 모두가 폭력의 범주다. 녀석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제 몫을 벗어난 폭력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폭력에 순응하게 되고 그 폭력이 체화된 뒤 드러나는 전형적인 수순일 뿐이다. 사랑한다는 여자와의 관계에서 돈을 주고 그 돈을 보고 웃는 여자의 관계가 사랑인가. 차라리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주 짧은 탈출구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그 반증은 탈출구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그가 최후의 폭력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30여개 정도 되는 시퀀스 대부분은 원 씬 원 컷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장면을 분할없이 계속 찍는다는 말인데 배우들의 이동 시 카메라가 정말 절묘하게 따라 붙는 신기함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 저런 장면을 어떻게 찍었을까 하는 화면들이 시선을 사로 잡으며 잠시 숨을 쉴 수 없게 한다. 트럭에 깔리는 장면과 세 차례에 걸친 정사 장면과 불법 낙태장면, 그리고 충격적인 엔딩이다. 물론 촬영 기술로 만들어진 것들이지만 이 영화가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라는 점(선입견이겠지만)에서 그저 놀랄 뿐이다. 동유럽, 구 소련의 서늘한 분위기도 영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트라이브 (2015)

The Tribe 
8.9
감독
미로슬라브 슬라보슈비츠키
출연
그리고리 페센코, 야나 노비코바, 로사 바비, 알렉산데르 드시아데비치, 야로슬라프 빌레츠키
정보
범죄, 드라마 | 우크라이나, 네덜란드 | 130 분 | 2015-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