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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 [리뷰] 전쟁은 총칼로만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효준선생 2015. 2. 18. 07:30

 

 

 

 

 

   어떤 영화?  컴퓨터의 시조, 영국인 앨런 튜링의 이야기

 

 

 

 

컴퓨터를 처음 접한 건 82년 무렵으로 기억된다. 여전히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고 다니던 중학생때, 학교 초입에 있던 허름한 가게에 놓여 있던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신기해 하면서도 어렵게만 느껴졌던 그 기괴한 물건이 지금 이렇게 일상을 변화시켜 놓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신기했지만 오락실에 있던 게임기처럼 흥미롭지도 않고 커서만 껌뻑거리며 밥을 달라며 떼를 쓰는 아이마냥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던 그걸, 심각하게 인식했던 건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기술 시험에 컴퓨터에 대한 내용이 언급된 뒤였다. 하지만 그 컴퓨터를 일상으로 다루게 된 시점은 두 번째 직장 생활을 하게 된 이후의 일이었다. 책상마다 컴퓨터가 놓여져 있고 하루 종일 그걸로 작업을 해야 하는 기계적인 삶이 시작되었다. 그래봐야 업무 보고서와 품의서를 위한 문서작성과 액셀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이지만 그런게 회사원의 전형이라고 믿으며 살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웬만하면 모바일로 해결이 되는 시절인지라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 들어온 IT기술이 그다지 신기하지도 않지만 컴퓨터 원리가 처음 인식되었을 때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 간단한 수리 계산을 위해서 벽 하나를 채울 규모의 컴퓨터가 있어야 했던 초창기, 그러나 그 이전부터 그런 컴퓨터에 들어갈 로직을 만들어낸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영국의 앨런 튜링이다. 워낙 그쪽 일과는 안 친해서 모르는 인물이었는데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보니 종이에 펜으로 쓰는 게 아니라 지금 이렇게 노트북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그 사람의 노고였구나 싶다.

 

 

그런데 그 바탕에 전쟁의 그림자가 스멀거린다. 2차 세계대전, 수많은 인명의 살상이 벌어지던 그 때 적의 동태에 대해 미리 알 수 있다면 아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테지만 강력한 암호문을 사용하던 독일군 앞에 영국을 비롯해 우방국들의 처지엔 그러질 못했다. 그러던 차 튜링을 비롯해 몇몇 똑똑한 인물들을 모아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토록 했으니 그것의 성공여부에 따라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었다.

 

 

이 영화는 적의 암호문을 깨기 위해 조직된 인재들과 그 중에서도 앨런 튜링이라는 인물에 주목하는데 그의 독특한 개인적 성향과 맞물려 천재는 남들과는 많이 다르고 그걸 인정해 주는 사회적 배려는 어디까지인가를 살펴보고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기 할 것은 다 하는 정치권 인사들의 얍삽한 처세까지 드러내고 있다. 중간 중간 튜링의 학창시절을 삽입해 가며 그가 천재적인 수리학자이면서도 동성애자로 살았던 일상을 그가 기어코 개발해내고 만 시스템의 모습과 비견해 극적인 효과를 얻어낸다.

 

 

그는 왜 그토록 기계에 불과한 크리스토퍼의 개발에 매달렸을까 적의 동향을 미리 알아내기 위해 만들라고 하던 윗선의 지시 때문이었나 혹은 과학자로서의 공명심 때문이었나. 그것도 아니라면 훗날 자신이 개발한 시스템과 로직들이 후세들에게 생활의 편리를 가져다 줄 문명의 이기로 발전할 것이라는 걸 미리 예견이라도 했던 걸까. 그는 마치 사기를 쓴 사마천 처럼 모진 형벌을 감수해가면서 자신의 그것을 지켜냈다. 비극적 삶의 끝자락에 덜렁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던 건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은 그 머릿수만큼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이 세상에 대한 진한 회한 같은 것이리라.

 

 

그는 외골수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닌 듯 했다. 동료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의 프로젝트는 일찌감치 문을 닫았을 것이다. 곁에 두고 싶어서 약혼까지 한 여자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선 이내 흔들리는 모습을 하는 그. 만약 그 당시 동성애가 범죄라는 영국의 형법이 없었다면 컴퓨터의 등장은 더 빨라지지 않았을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그의 족적을 이렇게 영화로라도 보고 나니 당연히 그런 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가 들통이 난 셈이다. 세상엔 또 다른 튜링이 지금 어디선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뭔가를 만들어 내려고 애를 쓰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본 영화 액스 마키나에서 주인공 남자가 AI를 상대로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는 걸 일컬어 튜링 테스트라고 해서 그게 뭔가 했더니만 바로 앨런 튜링의 그것이었다. 이렇게 영화를 두 편 보면서 그럴듯한 상식을 얻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이미테이션 게임 (2015)

The Imitation Game 
9.1
감독
모튼 틸덤
출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키이라 나이틀리, 매튜 구드, 마크 스트롱, 알렌 리치
정보
드라마, 스릴러 | 영국, 미국 | 114 분 | 2015-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