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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삼관 - [리뷰] 가족은 고기 왕만두를 나눠 먹는 관계

효준선생 2015. 1. 17. 07:30

 

 

 

 

  어떤 영화? 자기 살아온 일만 회고하는 아버지와는 다른 진짜 아빠의 모습이다 

 

 

 

중국의 현대소설가 여화(余華)는 어린 시절 문화대혁명이라는 광풍을 직접 몸으로 겪으며 정치가 민초들의 생활을 억압했을 때의 서글픔을 언젠가 글로 묘사하려고 다짐했다. 번듯한 글쓰기 공부를 배운 적 없는 그는 소설 인생[活着]이 장예모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고 이 작품이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작이 되면서 일약 유명 소설가로서 입지를 굳혀 갔다. 소설 허삼관매혈기[許三觀賣血記] 역시 궁핍했던 그 시절 민초들의 팍팍했던 일상을 서정적으로 그려내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이 소설이 출간된 1996년은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의 싹이 틔울 시기였는데 중국인들로 하여금 잠시 잊고 지냈던 그 당시의 마음으로 돌아가 아버지에 대한 연민으로 많은 눈물을 짓게 했다.

 

 

하정우 연출작 허삼관은 역시 이 소설을 감명깊게 읽었던 하정우가 한국전쟁이후 피폐해진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있던 혈연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 놓은 영화다. 한국 영화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배우이면서도 2년 전 영화 롤러코스터를 통해 연출자로서의 재기발랄함을 맛 보여준 그는 워밍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규모가 상당한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연출 능력을 드러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갔다. 영화 허삼관은 앞부분은 코믹한 에피소드들이 후반부엔 이 영화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아버지로서의 본분을 감명 깊게 그려내는 데 성공한 셈이다.

 

 

워낙 오래된 시점을 그리다 보니 전체적인 배경은 거지꼴을 면하지 못한 채 살던 1953년에서 64년 사이의 모습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외면하고 싶었던 가난이 덕지덕지 드러났지만 오히려 그런 풍경들이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어디서 구했을까 싶은 당시의 소품들이 잊고 있던 추억의 끝자락을 들추었으며 요즘은 구경하기 힘든 피순대, 붕어찜, 그리고 이 영화의 중요한 매개체인 고기 왕만두의 연이은 등장은 하정우 감독의 먹방을 다시금 재현하는데 기대치를 높이게 했다. 소위 하정우 먹방은 이번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왕만두는 물론이고 심지어 피를 뽑아 핼쓱한 모습으로 찢어진 우산을 쓴 채 퍼먹던 씨레이션마저도 맛있게 보이니 참으로 신기하다 

 

 

이 영화도 또 하나의 아버지 영화지만 허삼관의 아내인 허옥란의 역할도 과소평가되서는 안된다. 막 노동꾼으로 살던 허삼관이 그녀를 보고는 장가갈 결심을 하고 피까지 뽑게 된 사연, 그리고 허삼관이 이미 다른 남자에 의해 순결을 잃은 아내를 내치지 못한 채 그 꽁한 마음을 자기 씨가 아니라는 이유로 장남에게 섭섭하게 대하는 모습과 달리 허옥란이 세 아이를 모두 같은 마음으로 품어주는 건 부성 못지 않은 모성 때문이다. 허삼관이 장남에 대한 응어리진 마음을 풀게 된 결정적인 순간은 굿판에서 들린 아들의 절규 때문이 아니라 온 가족이 왕만두를 먹으러 나간 그날 장남이 만두를 먹지 못하게 되자 아내 자신도 굶는 모습을 봤을 때였다. 그게 바로 부모로서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병원비로 고민했을때 그녀의 선택도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시대가 지금과는 좀 다른 관계로 요즘에 저런 아빠가 어디있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대적인 빈곤이 가득했을 때 아빠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많지 않다. 가장이기에 책임져야 하는 부분도 많았을 테고 허삼관 역역 어렸을 때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랐을 것이 분명하다. 피를 판다는 것과 자신의 피를 물려 받지 못한 아들을 거두어야 하는 것에 대한 괴리는 무척 클 것 같지만 묘하게도 통하는 구석이 있다. 허삼관이 연이은 매혈에 쓰러졌을 때 그는 모르는 누군가의 피를 수혈 받는다. 돈이 필요한 그는 왜 자기가 남의 피를 받아야 하냐고 울부짖지만 또 그 누군가도 돈이 필요했기에 피를 팔았을 것이다. 만약 허삼관의 아들에게 피가 필요했다면 허삼관은 비록 아들에게 수혈해주지 못했을 테지만 그렇다고 가만 있을 허삼관은 아닐 거라 믿고 싶다. 피를 뽑은 자국이 선명한 팔뚝을 보며 자꾸 눈물이 났다. 부모 됨의 어려움이 떠올라서였다 

 

 

이 영화엔 이제 하정우 사단이라고 할 수 있는 많은 배우들이 참가한다. 영화 577프로젝트와 영화 롤러코스터를 거치며 그와 함께 했던 배우들이 조연과 카메오 출연을 한다. 더불어 이 영화에선 중요한 열쇠를 쥔 장남 일락 역으로 나온 아역 배우 남다름의 똘망똘망한 눈매가 인상에 남는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허삼관 (2015)

7.5
감독
하정우
출연
하정우, 하지원, 남다름, 노강민, 전현석
정보
| 한국 | 124 분 | 201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