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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스터 터너 - [리뷰] 자연이 화폭 안으로 들어오다

효준선생 2015. 1. 15. 07:30

 

 

 

 

  어떤 영화? 영국의 초기 인상파 화가 터너의 후반기 일생을 살펴보다 

 

 

 

 

영국의 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1775-1851)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당신은 미술에 조예가 깊은 셈이다. 여느 화가들의 이름은 미술책에 언급이라도 되었기에 들은 바가 있지만 터너라는 화가의 이름은 처음 들었다. 영화 미스터 터너를 보기 전 일이다. 19세기 유럽 미술계엔 여러 유파들이 존재했다. 그 중에서도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크게 왜곡하지 않고 부드러운 필치로 그려낸 인상파의 득세가 눈에 띄는데 마네, 모네, 드가, 르누아르에 이어 고흐, 고갱에 이르기까지 유명 화가들을 한데 아우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터너라는 이야기다. 물론 그가 이들을 직접 가르치거나 만나 멘토로서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터너의 작품을 일일이 보고 모사를 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하지만 보는 시선이라든지, 혹은 그 당시를 풍미했던 지식인들의 느낌은 결국 하나로 수렴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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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스터 터너는 그가 네덜란드 스케치를 하고 돌아온 뒤부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말년 화가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가장 완성도가 높고 완숙된 풍격을 보여주는데 그의 작품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처럼 영상에 펼쳐지는 광경이 신기하다. 아마 이 영화의 가장 주목받을 부분이 아닌가 싶다. 화가가 직접 목도해서 캔버스에 옮긴 장면을 이제와서 영상으로 재현한다는 것들이 놀라울 따름이다.

 

 

터너의 후반기 삶은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내와 자식과의 관계는 소원했지만 그 외의 것들에선 일견 자유롭기까지 해 보였다. 아들만큼이나 풍성한 재치를 뽐내는 아버지 터너와 또 아들 터너와 그 집안에서 하녀로 일하는 여인과의 관계가 묘사된다. 시간이 날 때마다 화구를 챙겨들고 바다와 강이 보이는 곳으로 나가 스케치를 하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으면 유곽까지 들른다. 그에게 자연과 사람은 모두가 피사체였던 셈이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그는 사람보다 자연에 주목한다. 그의 그림엔 빛을 절묘하게 구사한 부분들이 많다. 심할 경우엔 빛에 이그러져 전체적인 구도가 무엇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때도 있고 그런 기존의 방식과 다른 화법으로 다른 화가와 반목을 겪기도 했다. 특히 당시 영국 여왕이 그의 그림을 보고서 마뜩지 않아 하자 사람들은 그가 병에 걸렸다는 둥, 앞이 안보인다는 둥 입방아를 놀려댔다. 그런다고 주저않을 그가 아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데 열중했는데 특히 부둣가 민박집 여주인과의 만남은 그를 보다 안온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중반부에 그 당시 미국에서 들여온 신 문물로 소개된 사진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상당히 불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는 화가의 그림을 기계가 찍어내는 사진이 대체할 것이라는 생각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 또한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수용하는 장면이 있다. 예술가나 학술인, 종교인들에게서 흔하게 발견되는 아집 같은 건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나중에 자신의 그림을 몽땅 사러 온 졸부를 퇴짜놓고 자신의 그림과 스케치북들을 모두 나라에 기증해 누구라도 언제든지 자신의 그림을 보러 오게끔 한 기행으로도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다시 말해 그는 그림을 돈벌이의 수단이나 유산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다. 돌려 말하면 그는 당시 화가 치고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아무리 그림을 그려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는 비운의 화가도 많았던데 비해 그는 미술협회 일도 봤고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많았던 유명인사였다. 어찌보면 보수적이거나 기득권층으로 살 수도 있었을 법한데 그걸 내려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그림을 실컷 그리다 좋아하는 여인 곁에서 숨을 거두었으니 그마저도 운 좋은 남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를 만든 마이크 리 감독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실존 화가의 일생을 다루면서 마치 터너가 환생이라도 한 것처럼 그 시절의 분위기, 미장센등에 공을 들였다. 특히 노을을 뚫고 항해하는 테메레르호의 모습과 그걸 작은 배에서 지켜보는 터너 일행의 모습은 마치 컴퓨터 그래픽으로 짜놓은 것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렇게 인물에 대한 관조적 자세와 아름다움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여러 미술작품을 함께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150분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미스터 터너 (2015)

Mr. Turner 
9
감독
마이크 리
출연
티모시 스폴, 폴 제슨, 도로시 앳킨슨, 마리온 베일리, 칼 존슨
정보
드라마 | 영국, 프랑스, 독일 | 150 분 | 2015-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