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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강남 1970 - [리뷰] 욕망의 땅, 살아남은 놈이 강한 놈이다

효준선생 2015. 1. 14. 07:30

 

 

 

 

  어떤 영화? 강남 개발의 이면사, 그 안에서 몸부림 치던 두 형제의 질퍽했던 이야기

 

 

 

토박이가 아닌 이상 강남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에겐 지금 살고 있는 그곳의 30여년 전 모습이 상상이 안될 것이다. 설사 토박이라고 해도 그때 당시 지금의 강남에서 살고 있다는 건 땅뙈기를 일궈 먹고 살거나 양아치라고 불리던 넝마꾼이라는 이야기니 짐짓 모른 척 할지도 모르겠다. 좀 심하게 들리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돈 좀 만지는 사람들은 강북에서 살지 결코 강 건너 강남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시절이고 그때 강남은 논밭에 배 밭, 뽕 밭 일색이었다. 그 흔적들은 지금 남아 있는 지명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수역, 잠원동, 잠실등이 그렇다. 그랬던 곳이 지금은 부호들의 상징이 되었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따로 없다.

 

            

 

이미 언급한 양아치라는 말은 남들이 버린 넝마를 주워 생계를 잇는 하층민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 4대문을 중심으로 한 강북에서 나가는 것들 중에 사람이 죽으면 서대문으로 나가고 분뇨는 왕십리 밖으로 나가는데 강남은 아무 것도 버릴만한 게 없다고 했을 정도고 60년대 초만 해도 수도 서울 영역도 아니었다. 일제 시대부터 공업지역으로 어느 정도 사람들이 몰려 살았던 영등포를 제외하고 그 서쪽은 김포군, 영등포 동쪽은 광주군에 속했으니 강남이라는 단어의 원조 격인 영동(永東)은 그저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의미였다.

 

 

이랬던 곳이 갑자기 개발이 되고 사람들이 몰려 들게 된 바탕엔 정치적 논리가 숨어 있다. 1960년대 후반 박정희의 정치적 토대는 그다지 탄탄한 편은 아니었다. 그 자신이 쿠데타로 권력을 빼앗아 대통령 자리에 올랐기에 늘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당시 야당의 정치인들이 야심 차게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안절부절하는 상황이었다. 국력이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보릿고개를 걱정해야 할 판국과 대선을 코앞에 둔 형편에 그는 모종의 방법을 강구한다. 바로 강남 개발이었다. 겉으로는 북한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제2의 서울 개발이라는 명목을 달고 있지만 불모의 땅이라 여겨지던 그 곳의 땅을 매입하고 대규모 개발 계획을 발표하면 땅 값이 오를 테고 그 후엔 민간에게 되팔거나 혹은 불하의 대가로 기대수익을 챙기겠다는 속셈이었다. 나라가 나서서 은밀한 투기를 조장한 셈이니 그렇게 만들어진 자금을 바탕으로 그들은 자신들만의 유신도 밀어붙일 수 있는 여력을 갖게 되었다. 물론 굴지의 건설회사 다수는 이때부터 몸짓을 불려 나간 계기도 되었다. 정경유착의 시발이었다. 강남은 이렇게 욕망의 땅이었다.

 

 

영화 강남 1970은 바로 이런 시대상을 재현하고 그 안에서 부나방처럼 훨훨 타올랐던 민초들의 삶을 조명한다. 그동안 유독 강남에 몰입하며 영화를 만들어 왔던 유하 감독의 강남 3부작(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말죽거리 잔혹사)이라 할 수 있는데, 주인공인 두 의형제의 이야기 말고도 그 당시 정치권력에 의해 자행된 음모와 술수, 그리고 배신과 토사구팽이라는 수순까지 적절하게 담아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스크린 밖으로 뚫고 나올 정도로 타격감이 예사롭지 않은데 다 보고 나면 기진맥진해질 것이다. 중반부엔 이 영화가 느와르 장르였었나 싶을 정도로 잔인한 장면들이 속출하고 남녀의 거친 성행위도 불사하는데 그런 장치들은 그 당시의 시대상을 또한 반영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그 사이를 위태롭게 지나간다.

 

 

마치 긴 터널을 지나온 기분이 들었다. 해방둥이라는 딱지를 달고 같은 고아원 출신의 두 의형제, 불도 들어오지 않는 판자집에서 기거하며 양아치라는 소리를 듣던 그들에게 자신들의 주먹은 신세계를 맛보게 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그들이 내세울 건 그저 주먹질이었다. 남들보다 한 족장은 긴 체구에 압도적인 눈빛만으로도 형님과 아우를 만들어 버리는 포스. 그러나 세상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건 그런 만이 아니었다. 깡패와 개발용역으로 살아야 했던 그들에게 희망이란 가져 보지 못했던 돈과 땅에 대한 집착이었고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거둬준 보스에 대한 충심도 필요했다김종대(이민호 분)라는 캐릭터는 의형제와 의사(擬似) 부자관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로 나온다. 의지할 곳 없는 그가 정을 붙이고 사는 곳,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음에도 자기 집이라 칭하고 연정을 품고 있는 여인을 향해서도 그런 내색조차 하지 않았던 걸 그는 땅을 품에 넣는 것으로 대신한 셈이다. 형 뻘인 백용기(김래원 분)가 전 세대가 그랬듯, 이권 다툼에 관심을 갖고 조폭 흉내를 내는 것과는 차별되는 부분이다.

 

 

우연한 계기로 엇갈린 길을 걷던 형제는 당시 강남 개발과 맞물려 이권 다툼에 혈안이 되었던 조직들과 어울리게 되고 살기 위해 주먹질을 하고 심지어 살인을 일삼게 된다. 죽이지 않으면 언제든지 린치를 당할 수 밖에 없던 시절, 그래도 다시 만난 형과 아우는 늘 함께 할 거라 믿었지만 세상은 그 두 사람을 형제애로 묶어 두는 데 인색했다. 두 남자의 육박전에 가까운 혈투도 따지고 보면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이미 위에 있던 자들을 끌어 내리는 과정은 험난하고도 질퍽했다. 그 와중에 지켜야 할 사람이 생겼고 본의 아니게 해를 끼쳐야 하는 사람도 생겼다. 진심을 설명할 겨를도 없었다. 그때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

 

 

영화의 엔딩 즈음, 논밭이던 강남에 마천루가 올라가고 부의 상징이 된 지금의 모습이 부감되었다. 그 과정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혼령들은 그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 땅에서 돈을 만들어 내며 잘 살았을 또 누군가를 생각하며, 강한 놈이 살아 남는 게 아니라 살아 남는 놈이 강한 놈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강남 1970 (2015)

9.7
감독
유하
출연
이민호, 김래원, 정진영, 설현, 유승목
정보
액션, 드라마 | 한국 | 135 분 | 2015-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