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상의원 - [리뷰] 옷은 날개, 매료된다

효준선생 2014. 12. 22. 07:30

 

 

 

  어떤 영화? 옷을 통해 신분과 재주와 그리고 감정에 대해 논하는 눈이 호강하는 사극 

 

 

 

전제 군주 시절 왕의 처소인 궁궐은 그 자체가 소우주요, 자립경제가 가능하도록 꾸며진 별천지였다. 전국 각지에서 공물로 올라온 나라에서 으뜸가는 먹거리와 원재료들이 창고에 쌓이고 왕의 한마디면 그 어떤 것도 대령해야 하는 그런 시절이었다. 태어나자 마자 궁궐에서만 지낸 왕들로서는 그걸 생산하기 위해 민초들이 얼마나 많은 노고와 희생이 수반되었는지 잘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고혈을 짜내도 왕에겐 그저 오늘도 풍족한 한끼 식사가 마련되어야 하는 법, 그가 입은 옷은 또 얼마나 화려했을지 미루어 짐작해볼 만 하다.

 

 

영화 광해를 통해 우린 왕이 먹는 수라상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산해진미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차려지지만 한 젓갈도 대지 않은 음식들이 아래 사람들에게 나눠지던 장면을, 하지만 옷은 달랐다. 왕의 공식의복인 용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옷들엔 왕을 상징하는 용이 그려져 있으니 설사 왕이 그걸 내다 버렸다고 해서 얼씨구나 입고 다녔다가는 이튿날 세상과 하직할 일이다. 그만큼 옷은 그 사람의 권력과 지위, 그리고 사는 정도를 드러내는 품격의 척도다. 물론 지금도 부자들은 명품이니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수제 양복이니 해서 입는 것으로 위세를 떨지만 모든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당시로선 무엇보다 의복이 최고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조선시대 궁궐엔 왕과 왕비, 그리고 왕족과 문무백관의 옷을 짓는 상의원(尙衣院)이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개 평민이나 중인 출신이었고 아주 간혹 정식 관직을 받아 양반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신분이 천하고 배운 것 없는 그들이 왕을 지근거리에서 모실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으며 그만큼 바느질이나 옷감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곳이었다.

 

 

영화 상의원은 바로 조선 후기 상의원을 배경으로 사연 많은 왕과 왕비와 그들을 위해 옷을 짓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다룬 사극이다. 이 영화를 딱 두 단어로 압축하자면 경쟁과 질시다. 거의 대부분의 주요 캐릭터에서 찾을 수 있는 이 두 가지 요소는 극중 긴장감을 높이고 극의 흐름을 곡절있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화두만 놓고 보자면 마치 요즘 한국의 고등학생들이나 여러 회사원들의 이야기와도 닮아 있는 것이,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의 이야기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게 없음을 확인하게 만든다.

 

 

우선 왕을 보자. 후사(後嗣)가 없는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졸지에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 동생. 왕의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천한 무수리 출신의 모친 때문에 형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포인트는 자신의 중전 간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중전 역시 결핍의 아이콘이다. 의지할 부친이나 외척도 없이 덩그러니 거처에 머물러야 하는 그녀, 왕은 일체 발걸음도 내비치지 않는 탓에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결코 경거망동을 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중전의 모습이다. 여기에 더해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화자라 할 수 있는 상의원의 어침장(御針長) 조돌석은 고아 출신으로 30년 고생끝에 알아주는 최고의 바느질 솜씨를 자랑하는 기술자가 되었지만 난데 없이 등장한 재야의 실력자 앞에서 망신을 톡톡히 당하는 중이다. 바로 그가 키맨 역할을 하는 이공진이라는 청년이다. 기방에 머물며 기생들 옷이나 짓던 그가 졸지에 용포를 만들며 관심을 받게 되고 그의 옷짓는 솜씨가 대단하다는 소문에 그는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실력만큼이나 그를 시기하는 자와 그의 옷을 둘러싼 암투들이 장난이 아니다. 이외에도 병조판서의 여식으로 중전의 자리를 노리는 소의와 이공진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기방여자들 역시 경쟁심과 질투심으로 가득 찬 캐릭터들로 포진되어 있다.

 

 

이렇게 적지 않은 인물들이 자신의 사연을 풀어놓는데 주력하지만 서로가 서로와 물려있는 관계로 인해 크게 복잡하거나 삼천포로 빠지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왕은 자신의 컴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해 화려한 옷으로 보상받고자 했고, 식은 사랑을 놓고는 괜한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또 왕비는 새로 들어온 소의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며 대드는 탓에 신경이 쓰이지만 그 보다 어쩐지 자신을 아껴주는 게 왕이 아닌 이공진인가 싶어 어느새 마음이 흔들리는 게 이상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낼 모레면 양반이 될 찰나에 뚱딴지 같이 나타난 어린 바느질 쟁이로 인해 자리까지 위태로우니 그를 견제도 하고 그의 솜씨를 탐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보다 더 좋은 옷을 만들어내기 위해 위험한 행위까지 모색한다.

 

 

구중궁궐의 암투는 정말 많은 이야기 거리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건 일반인으로서는 알 길 없는 딴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와 그곳 사람들의 암투가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안도가 뒤섞여서 이다. 워낙 좋은 곳이기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화려하다. 이번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수 십 벌의 옷들은 그저 눈요기 만으로도 좋다. 노출 장면 하나 없이 이공진이 중전의 옷치수를 가늠하는 장면은 이 영화 최고의 엑시터시이며 청나라 사신을 위한 진연 장면에서 등장하는 두 벌의 옷은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끝이 무엇인지 보여준 클라이막스라 하겠다.

 

 

복식은 음식문화보다 끌리는 자극이 덜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단독 소재로 다뤄진 바 없는 왕실의 옷을 소재로 그것을 둘러싼 가진 자들의 경쟁과 질시, 그리고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암투의 향연 속에서 부지런히 그것들을 따라가다 보니 두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 씨네필 소울이 뽑은 올해의 한국영화 후보작

 

 

 

 

 

 


상의원 (2014)

9.2
감독
이원석
출연
한석규, 고수, 박신혜, 유연석, 마동석
정보
드라마, 시대극 | 한국 | 127 분 | 2014-12-24

 

 

* 돌발 퀴즈: 이공진은 자신이 만든 옷임을 알리기 위해 옷 구석에 어떤 문양을 찍습니다. 어떤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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