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민우씨 오는 날 - [리뷰] 망부석이 되어도 좋을 한 여인의 기다림

효준선생 2014. 12. 2. 12:00




 

 어떤 영화?  이산가족의 슬픔을 담은, 짧지만 여운깊은 울림





사랑하는 사람이 늘 함께 곁에 있어준다면 세상은 얼마나 따뜻한 곳일까 조금 힘든 일이 생겨도 조금 난처한 일을 만나도 그래도 세상에 누구 한 사람은 내 편을 들어줄 거라는 믿음이 얼마나 든든한가. 그래서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에 의지해 살게 된다. 이 땅에서 평생을 살았던 70세 전후의 노인들에게 한국의 근현대사는 그들에게 그런 사랑을 하도록 허락하는데 무척 인색했다. 일본의 식민지배, 한국 전쟁 등, 이렇게 타의에 의해 헤어진 뒤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자연이 허락한 생을 차마 거스르지 못한 채 떠난 하직. 그저 개인사일 뿐이라고 하며 애써 무심한 듯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사랑은 점차 옛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영화 민우씨 오는 날은 북에 간 남편을 평생 기다리며 사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의 여성의 몸을 하고 있다. 그녀는 아마 초기 치매에 걸린 모양이다. 집 안팎에는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적은 쪽지들이 붙어 있고 그녀를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의 시선도 측은지심이 가득한 눈빛이다. 그리고 그녀의 정체가 드러나는 시점은 생각보다 조금 지난 뒤였다. 냉면집에서 나오는 그녀를 아는 체 하는 목소리, 혹시 평양여고 출신 아니냐니...






그녀의 일상은 단출했다. 간단한 집안일을 하고 시장에서 장을 보고 가끔 평양냉면 집에서 냉면을 먹는다. 그리고 다른 노인들과 어울려 가볍게 춤을 추거나 혹은 퍼즐을 한다. 그러면서 내일 민우씨가 오면...이라고 입말을 끄집어낸다. 도대체 민우씨는 누굴까 누구길래 그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애타게 기다리는 걸까 영화엔 한 여자의 전화 목소리가 나온다. 연희씨라고 부르는 걸 보니 친구인 듯하기도 하고 내용만으로는 그녀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이쯤되면 서서히 그녀의 정체가 밝혀질 법한데, CG로 처리된 그 변신의 과정이 놀랍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혹시라도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있을까 해서 기대를 했다가 상황이 나빠지면 또 언제나 만날 수 있을까 애태우며 산 지 어언 60여년, 그럼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그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지금까지 기다려온 자신의 시간들이 허투로 버려지지 않을 거란 믿음 때문이다. 가끔 거울을 보면 어느새 주름이 쪼글쪼글해진 얼굴이 거기에 있다. 헤어졌을 땐 그래도 고운 얼굴이었는데 세월의 흔적이 입힌 뒤 혹시라도 못 알아보면 어쩔까 싶다.






 

이 영화는 홍콩 국제영화제 주선으로 아시아 감독 열전의 옴니버스 시리즈 중 한 편으로 기획된 26분 짜리 단편 영화다. 문채원을 비롯해 고수, 손숙등이 출연을 하며 유호정이 목소리 연기로 나온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 전개, 안정된 연기 호흡, 그리고 한국이 갖고 있는 시대의 특수성을 한 여인의 일상과 맞물리도록 짜놓은 연출이 돋보인다. 이 영화의 연출은 강제규 감독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북촌 한옥마을에서 내려다 본 엔딩신...옛 서울의 모습이 담겨 있다





민우씨 오는 날 (2014)

Awaiting 
8.8
감독
강제규
출연
문채원, 손숙, 고수, 유호정, 최규환
정보
드라마 | 한국 | 26 분 | 201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