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지휘자를 위한 1분 - [리뷰] 최고보다 더 값진 최선의 퍼포먼스

효준선생 2014. 11. 25. 07:30





 어떤 영화? 이기는 것보다 즐기는 자를 고르는 승부의 세계




마에스트로라는 쉽지 않은 단어는 김명민이 나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통해서다. 굵은 웨이브의, 단호한 표정으로 똥덩어리라고 단원을 몰아세우면서 도대체 마에스트로가 무엇이길래 저리도 큰 소리를 칠 수 있다는 말일까 궁금해졌다. 흔히들 지휘자로 알고 있는 그 역할은 악단(오케스트라)의 단원을 이끌며 연주를 총괄 조정하는 자를 말한다. 클래식 공연 무대위에 오르는 각종의 악기주자들, 하나같이 엘리트 의식에 젖어 있을 테고 무엇보다 호흡이 중요한 마당에 하나라도 튀게 되면 그 공연은 망칠 수밖에 없다. 지휘자는 직접 연주를 하지는 않지만 그 수많은 악기주자들의 움직임을 조율하고 극의 특성을 살려 청중들에게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한때는 전세계 유명한 지휘자들을 손에 꼽으면 3대, 4대 마에스트로라며 아울러 통칭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워낙 개성있는 지휘자들이 다수 등장하며 그런 이야기들도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선배들의 전철을 밟아가며 명망있는 지휘자들이 되기위해 불철주야 애를 쓰는 후학들이 많다. 영화 지휘자를 위한 1분은 그들을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다.






매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안토니오 페드로티 지휘 콩쿠르는 전세계 젊은 지휘자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독특한 방식의 경연이다. 이 영화를 제작할 당시 136명의 지원자들 중에서 3차례에 걸친 오디션을 통해 최종 우승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지원자들이 많은 관계로 개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극히 짧았다. 그 제한된 시간 안에 자신이 가진 역량을 선보인 경우도 있었고 일부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애석하게 탈락의 고배를 마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또한 승부의 세계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 지금의 실력만으로도 작은 악단의 지휘자로서 충분할 테지만 사람의 꿈이라는게 어디 그런가 한 대회에서 떨어진 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분해서 울고 있는 게 아니라 다음 대회를 위해 가방을 꾸리고 부족한 실력을 연마할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될때까지 잠시 숨을 고른다. 그들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단계별로 탈락자가 속출하고 결국 5명만이 파이널 라운드에 올랐다. 당초 지원자들 중에는 한국인들도 보였지만 아쉽게도 결승무대에서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 영화가 한국인 감독의 영화가 아닌지라 그들의 모습은 비중있게 다뤄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마음에 닿는 장면들이 있었다. 승부의 세계에서 승자의 쾌감은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하지만 중도에 떨어진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을 격려해주는 비슷한 처지의 경쟁자들 사이의 훈훈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궁금한 마음에 어떤 상황인지 묻는다면 애써 외면했을 상황임에도 그들은 담담하게 알려주었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역할은 깐깐하게만 보이는 심사위원에게서도 나타났다. 탈락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단점은 무엇인지 조목조목 일러주는 것이다. 사실 지휘를 하면서 사지선다의 정답 같은 건 있을 리 없다. 이런 정성 평가에서 심사위원의 조언은 지금은 당장 잘 안되었지만 언젠가 더 큰 무대에 오를 그들에겐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자산이 될 것이다. 늘 경쟁 속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도라는 걸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이 영화는 승자에 대한 박수 이상으로 우승을 향해 나가는 과정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세상에 그 수많은 명곡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을 하나로 묶어 내고 그들의 화음이 청중의 심금을 울리는 작업이 결코 쉽게 만들어질 리 없다. 연습하고 또 하고, 손에 못이 박힐 정도로 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다.





만약 이 영화를 보면서 “강마에” 같은 카리스마 철철 넘치며 승부욕에 불타 연주자들에게 막말하며 통솔하는 지휘자를 볼 생각이라면 애초에 생각을 접는 편이 낫다. 이 영화는 승자 한 명만을 떠받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정글 같이 치열한 생존의 법칙을 수행하는 기계적 인간을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일상인 경쟁인 요즘, 곁에 두고 늘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클래식의 묵은 장 맛을 맛보게 하려는 연출자의 배려가 가장 크게 다가온다. 그동안 귀에서 멀리 했던 클래식 명곡들이 짧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귀 호강이 아닐 수 없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지휘자를 위한 1분 (2014)

One Minute for Conductors 
9
감독
앙헬 에스테반, 엘레나 고아텔리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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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다큐멘터리 | 스페인, 이탈리아 | 87 분 | 2014-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