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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퓨리 - [리뷰] 불확실한 시대, 탱크 안에 머물려 들다

효준선생 2014. 11. 23. 07:30





 어떤 영화? 멋지다고만 할 수 없는 전쟁 비극 





기갑병이라고 불리는 탱크 병과의 군인들, 그들에게 탱크는 그 자체가 집이다. 탱크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탱크가 아니면 아무것도 그들의 목숨을 담보해줄 수 없다. 아직도 2차 세계대전을 그린 영화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 이유는 바로 탱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화 퓨리는 영민한 전쟁 영화다. 두 차례 세계전쟁을 통해 최고 수혜국이 된 미국으로선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소재임에 틀림없다. 수많은 병사들이 죽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걸로도 충분한 영화의 소재를 제공해 오지 않았던가.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몇몇 리뷰를 보니 국지전의 전투신이 등장하지만 그보다는 탱크 소대원들의 심리묘사를 많이 다루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 영화를 보고 흥분하며 몰입했던 장면들은 세 차례에 걸친 탱크를 중심에 둔 포격전이었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인간적인 고뇌는 여타 전쟁 영화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승전국의 군인이었고 그들의 동료는 적국으로 설정된 독일 군에 의해 죽었다. 동료를 잃은 분노는 셔먼 전차 포신에다 분노라는 의미의 영화 제목인 FURY를 써넣었고 그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독일 땅을 누비며 포격을 가할 뿐이다. 이 영화를 확대시켜 반전(反戰)의 의미 같은 걸 부여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독일군은 그가 어떤 사람이든 죽여야 하는 대상이며 그걸 하지 못하면 군인 축에도 들지 못한다며 윽박지르는 대장의 모습이 당시의 경직된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탱크 퓨리 팀은 신병이 들어오기 전부터 존재했고 그들의 혁혁한 성과는 그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어려운 전투에 내몰리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런 이유로 전투를 그만둘 여유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처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어렵지 한 두 번 하고 나면 무덤덤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영화 중반부에 적성국 아녀자와의 썸 타는 장면이 등장하고 그 과정에서 약간의 휴머니티를 발산하기도 하지만 이후 단 한번도 그 장면은 신병의 인간적 고뇌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선임이 말한 것처럼 그저 스쳐 지나는 전쟁터 속에서의 인연이었을 뿐이다.






그럼 이 영화는 흔한 영웅놀이였을까 혹독한 전쟁터에서 잘 다듬어진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는 대장을 비롯해 다섯 명의 명운은 이미 처음부터 예견되었다. 명사수 소총수의 대타로 들어온, 아직 풋내기 신참의 눈에 이 전쟁은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지만 적군이라고 해서 인명을 살상하고 그런 것들이 누적되면서 감수하게 되는 무감각한 살상의 유혹들. 어른이 되어가는 전형적인 과정의 묘사다. 신병은 전쟁터에서 경험치만 놓고 보자면 말 꼬투리도 잡지 못할 수준이고 툭하면 쥐어 막히는 신세다. 그것들이 조금씩 해소되는 데에는 결국은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아닌 우리가 다 죽을 것이라는 공동체 의식 같은 것들이 작용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건 다섯 명의 소대원들 간의 유대는 크게 발휘되지는 않는다. 탱크 안에서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 같이 유기적으로 작동하지만 그건 그렇게 하지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나오는 기계적인 동작이다. 상대를 포격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것 같은 공포심. 탱크 안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갈겨대는 포탄들.  대장이 지시를 하고 운전병이 방향을 잡고 포수와 장전병이 발사할 대포를 준비한다. 그리고 소총수는 포탄이 놓치는 작은 부분을 노린다. 그 장면들이 지나고 나면 이들 사이는 그저 먼산을 바라보는 관계에 놓인다. 툭툭 던지는 남자들(특히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군인들)의 한마디 정도가 유대를 상징하는 끈끈이 역할을 한다. 신병을 중심으로 선임들은 유사 부자 관계, 혹은 숙질 관계로 보인다. 






이 영화의 여섯번 째 주인공은 탱크다. 평생 탱크를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도 많을 테지만 그 안에 들어 앉아 있으면 세상 그 어떤 공격에서도 별 탈이 없을 것 같은 견고함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구나 하는 확인 장면이 처음 등장한 뒤엔 오히려 공포스러웠다. 흥미로운 건 탱크에서 쏜 포가 상대 탱크에 명중했을 때 생각대로 망가지지 않는 경우다. 독일 전차와 1대 4로 붙는 장면에서 한수 위 성능을 자랑하는 독일 전차를 상대로 미국 전차들의 모습은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전멸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급이 다른 전차(퓨리는 셔먼 전차, 독일 것은 티거전차) 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기는 모습을 선사한 건 그 당시 독일이 패망에서 얼마 남지 않았고 그 전차가 마지막 보루였음을 상징하는 걸로 봤기 때문이다.  물론 퓨리의 명운도 거기서 크게 벗어 나지 않는다. 






상당히 긴 러닝타임이다. 진격과 휴지를 거듭하며 어디론가 움직여야 하는 탱크 퓨리, 승전보가 멀지 않았음을 이들이 알았더라면 이들의 마지막 행보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았을까 대장의 선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을 것 같다. 유능한 장수라면 부하 병사들의 목숨 또한 헛되이 하지 않아야 하건만 이 영화는 소영웅주의를 택해버린다. 그 말은 영화 속 인물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과연 살아남은 자는 영웅인가? 전차 퓨리가 마치 말년 병장이 들려주는 부대의 전설처럼 아직도 이야기 거리가 되는 건 살아 남겨진 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며 <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다> 라는 말처럼 이 영화의 메시지는 <금이란, 과거에 힘 센 사람들에 의해 이겼기에 존재한다>는 의미정도로 마무리하고 싶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퓨리 (2014)

Fury 
8.5
감독
데이비드 에이어
출연
브래드 피트, 로건 레먼, 샤이아 라보프, 마이클 페나, 존 번달
정보
액션, 전쟁 | 영국, 중국, 미국 | 134 분 | 2014-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