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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철의 꿈 - [리뷰] 거대한 덩어리가 주는 묵직함에 압도되다

효준선생 2014. 11. 12. 07:30





어떤 영화?  제철소와 조선소의 모습에서 한국의 산업화 시대를 보다 





울산과 포항이 압축 경제 성장시대의 대표적 아이콘이 된 중공업 단지로 성장한데는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최고 결정권자의 지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자기 고향이나 다름없는 경상도와 항구를 끼고 있어 물류에 용이하다는 점, 한 곳은 철강을 생산하고 다른 한 곳은 그곳의 철강을 이용해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다는 시너지 효과를 본 셈이다.






그때는 이 두 곳이 가지고 있는 도시 이미지라는 게 굴뚝 경제의 상징과도 같았다. 80년에 친척이 그곳 제철소에서 일한다고 하여 하룻밤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단층 사택에서 묵으며 본 텔레비전에선 머리가 벗겨진 인물이 나와 좌중을 압도하며 분위기를 몰아가며 연설을 하고 있었고 함께 시청하던 어른이 그가 다음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 포항에서의 하룻밤은 이상스레 저온 현상으로 여름이 여름 같지 않았던 그 해를 그렇게 덮고 넘어갔다. 멀리서 뿜어져 나오는 흰 연기마저 을씨년스러웠다. 






영화 철의 꿈을 보면서 옛 생각이 났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대략 3,4 군데 공장을 둘러보고 수 개월 동안 공장 밥도 먹을 기회가 있었다. 그곳은 거대한 용광로고 섬이었다. 컨베이어 벨트로 올라탄 부품처럼 공장 근로자들을 빨아들인  그곳에선 윙윙거리는 기계음과 코를 쏘는 화공약품들이 즐비했다.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큰일을 치루는 게 다반사인 그곳. 각지엔 경고문들이 붙어 있고 생산성을 독려하는 각종 구호들이 난무했지만 그곳에서 노동자는 기계의 한 부품이나 다름없었다. 






이 영화는 울산과 포항의 공장을 중심으로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서 찾을 수 있는 옛 사람들의 생활상을 유추하고 동해에서 간혹 발견된다는 거대한 고래의 움직임, 그리고 불교의 제례의식들을 혼합해서 만든 관조적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대상에 대해 날카로운 비평이나 독설에 가까운 나레이션은 없다. 60년 대부터 꾸려져 온 근대화의 상징물과 그 곳을 채우고 지금도 열심히 가동중에 있는 각종 기계 설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느릿느릿해 보이지만 워낙 거대한 녀석들인지라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 지금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에서의 촬영은 이 영화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니 희소성도 있다.






그럼 과연 이 영화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을까 단순히 산업 발전의 일환으로서의 공장의 모습만 보여주는 건 아닐 것이다. 철의 사용은 인류의 문명이 획기적으로 향상하는데 엄청난 공헌을 했다. 쇳물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장관이지만 그 곳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자동화된 기계의 도움 덕분이다. 다시 고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옛 사람들은 고래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 경악하고 만다. 도무지 상대할 수 없는 그 거대 생명체에 대적하는 건 포기하고 토템에 가까운 경외심으로 삼았다. 그러다 도구의 발달로 고래는 인간이 잡을 수 없는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고래에 대한 경외심에서 포획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 영화가 두 곳 공장의 모습을 풀샷으로 잡아 보여주고 한편으로는 굉음으로 내며 바닷 속을 유영하는 고래의 모습과 비교하는 장면을 보면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쯤일까 고민하는 것 같아 보인다. 다시 말해 기계에 의해 혹시라도 인간의 역할이 축소되고 존재의 의미가 상실되는 순간, 인간은 인간에 의해 언제든지 잡힐 수 있는 고래가 되는 것은 아닌지, 철이 제 아무리 강력한 포스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국 거기서 만들어지는 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니겠냐는 물음을 던진다.






유수의 외국 언론이 이 영화를 평하면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반응은 어쩌면 생각보다 빠르게 발전해 온 한국의 역동성을 과찬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숨차게 달려 온 지난 수십 년간의 한국에서 과연 철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인간이 꾸어야 하는 꿈은 또 무엇일까 심장을 울릴 듯 퍼지는 공명의 종소리와 고래의 울음소리가 여태 귓가에 맴돈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쇳물과 기계 장비들의 퍽퍽함 속에 고래의 바닷 속 유영은 삼림욕을 하는 듯 시원하다





철의 꿈 (2014)

A Dream of I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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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경근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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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100 분 | 201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