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앵그리스트맨 - [리뷰] 인생은 숫자가 아닌 대시(-)가 중요하다

효준선생 2014. 11. 5. 07:30





 어떤 영화? 한 남자의 90분 동안의 버킷 리스트, 그 번잡한 마무리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건 그 누구도 피할 갈 수 없는 숙명이다. 단지 언제 그 날이 도래할지를 짐짓 모른 척 사는 것일 뿐 열심히 달려 죽음이 멀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그제서야 이 평범한 진리가 가슴에 와 닿게 된다. 아직 어린 친구들에게 죽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냐고 물으면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되묻는다. 허나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몇 번 정도 크게 아프고 나면 죽음이라는 건 외면한다고 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올 여름 영화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타계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직 초로의 나이인데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싶었지만 개인적인 고뇌에 대해 이역만리 영화 팬으로서 어찌 알겠는가. 그리고 이어 그의 죽음 뒤 영화 앵그리스트맨이 개봉했다.  이 영화는 마치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이라도 하는 것 같은 내용이 담겨져 있다. 죽음이라는 보편타당한 화두를 담고 있는데 자꾸 이 영화가 끝나고 혹시 그의 죽음과 어떤 연관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기이한 느낌들을 배제하기 어려웠다.






메가시티 뉴욕에서 사는 초로의 남자. 무슨 일만 있으면 버럭하기 일쑤고 세상에서 싫은 것들을 나열하는 건 참 잘한다. 그래서인지 병원에서 진단 받은 결과 뇌동맥류라 한다. 쉽게 얘기해서 뇌 속 혈관이 터져 오래 살 수 없다는 건데 성질 급한 그는 의사에게 도대체 얼마나 살 수 있냐고 다그쳐 얻은 답은 겨우 90분. 이제 그는 시한부 인생이 된 셈이다. 그 시간 안에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던 그는 마음의 부담이 되어버린 가족과의 오해를 푸는 일에 쓰기로 한다. 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조급함에 그 넓은 뉴욕을 활보해 보지만 세상은 그의 마지막을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사실 그 어떤 병도 겨우 90분 밖에 살 수 없다고 선고하는 건 없을 것이다. 환자가 멀쩡하게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라면, 의사 말대로 겨우 칠면조 한 마리 구울 시간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잡지에 쓰여진 숫자를 언급했을 뿐이지만 사실 이 영화 러닝타임이 80여분임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감독은 이 영화를 보는 시간 동안 당신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배려를 한 것 같다.






친구를 만나는 일도, 별거 중인 아내와 만나는 일도, 아들과의 서먹한 관계를 푸는 일도, 그리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90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그의 일상에서 그 성질은 별로 변한 게 없다. 아들에게 보여준다며 찍은 동영상에서도 버럭하는 장면은 빠지 않았고 인종 차별 소리를 들을 게 뻔한데도 우즈벡에서 온 운전수와의 설전도 온통 혈압 올리는 과정이었다. 세상에서 그렇게 화를 잘내는 사람에게 인생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에게 남은 삶에 대한 의미를 알려주려는 역할로 등장하는 의사는 이 죽어가는 노인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막상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만 할 수 없는 것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사라지며 홀로 남겨진다는 걸 깨닫는 순간, 인간은 무한한 존재가 아님을, 그리고 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했을 때 포기와 혹은 아쉬움 중에 어떤 게 더 크게 작용할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는 8일을 더 살았다고 했다. 90분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을지, 아니면 8일이라는 시간이 더 주어졌을 때 그는 진정 귀중한 시간을 얻었다고 생각했을지 잘 모르겠다. 그를 기억하는 건 그 자신이 아닌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를 기억하듯이 말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앵그리스트맨 (2014)

The Angriest Man in Brooklyn 
9.2
감독
필 알덴 로빈슨
출연
로빈 윌리엄스, 밀라 쿠니스, 피터 딘클리지, 멜리사 레오, 해미쉬 링클레이터
정보
드라마 | 미국 | 83 분 | 2014-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