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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현기증 - [리뷰]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다

효준선생 2014. 11. 4. 07:30





 어떤 영화? 내부와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묻는다




동물 중에 어떤 녀석들은 적이 나타나면 몸통은 내버려 둔 채 대가리만 숨긴다고 한다. 인간이 보기에는 귀여울지 몰라도 정글에선 목숨을 내놓는 짓인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한 행동을 급하게 감추려다 보면 뜻하지 않는 결과와 만나게 되고 그 짧은 순간 잘못된 판단은 무고한 인명의 살상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어지럼을 뜻하는 현기증은 귓속 기관에 문제가 생기거나 혹은 뇌질환과 관련이 있는 병적 증세다. 순간적으로 핑 도는 현상 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하는데 만약 손에 날카로운 것이나 뜨거운 걸 들고 있다면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다. 영화 현기증은 이렇게 순간적으로 자신을 찾아온 현기증 증세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자를 잃고 난 뒤 보여준 한 할머니의 이상한 행동과 그로부터 시작된 가족의 붕괴를 다루고 있는 스릴러 드라마다.






이 영화는 사실 영화 시작 부분에 복선이 될 만한 것들을 많이 설치해놓았다. 4인용 식탁에서 다른 가정과 별로 다를 것이 없이 두런거리면서 식사를 하고 그 와중에 엄마의 치매증세와 여동생의 학교생활을 언급한다. 급작스러운 복통과 분만, 이미 한 차례 유산 끝에 어렵게 얻은 아이라는 설명과 함께 어딘지 어두워 보이는 가족들의 표정이 이야기의 전개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일상성에 균열이 생긴 건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핑돈다는 현기증으로 말미암아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그 직후 선택은 단순한 해프닝과 악몽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말았다. 생각하지 못한 사건은 언제든지 발생한다. 하지만 그 후속 조치에 대한 선택은 어느 정도 자의적이다. 그런데 영화 속 상황이라는 건 엄마에게 치매 증세가 있고 그 증세가 심해진다는 언급이 이미 나왔던 탓에 관객들은 감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당신들이 생각하는 좋지 않은 상황들은 전혀 개선의 기미 없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것이고 그걸 이겨내야 이 영화를 끝까지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암묵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상황이 발생하고 가족간의 균열은 이내 폭발하고 만다. 두 명의 엄마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생긴 건가” 만을 고심했겠지만 이들의 내적인 다툼 말고 또 다른 고민과 선택 하나가 외부에서 검은 혀를 낼름거린다. 고등학생은 둘째 딸은 엄마와 언니의 고통과는 또다른 고통을 받는다. 만약 정상적인 가정이었다면 그녀는 분명 심적인 여유가 있는 가족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니와 여동생 사이의 설전에서 알다시피 아무데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그저 외부로부터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다들 자신의 상황이 최악이라고 여기는 순간 그들의 선택에 자비 같은 것은 이 영화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극적인 순간 도움을 줄만한 사람이 나타나고 나뿐 짓을 한 사람들에겐 거기에 따른 벌이 주어져야 어느 정도 쾌감이라도 얻을 테지만 그게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은 그 끝이 어딘지, 잘못된 선택으로 귀결되는 최종단계는 어떤 양상인지, 이 네 사람의 모습으로 갈음한다. 발단과 전개 그리고 마무리까지 가는 과정이 참으로 독하다. 내재적인 폭발음으로 인해 먹먹해질 뿐이다. 인간은 원래 좀 악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을, 어쩌면 아무도 믿지 못할 세상에서 좀 더 오래 살기 위해서, 아니 버티기 위해선 도대체 무엇이 필요한 걸까 자문하게 된다. 






전작 가시꽃을 통해 역시 인간의 내면을 예리하게 파헤치며 성공적인 장편 데뷔를 했던 이돈구 감독과 각자의 연기력을 이 작품을 통해 모두 보여주겠다며 열연을 한 네 명의 배우들의 탈진 직전의 연기들은 크게 흠잡을 때가 없다.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강원도 외진 곳의 가을철 풍광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딘지 쓸쓸해 보였다. 이 영화는 각자의 사유(思惟)가 만발할 늦가을에 제법 어울리는 분위기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작년 말부터 다작을 하는 김영애 배우, 활화산 같은 연기를 선보인다





현기증 (2014)

Entangled 
7.2
감독
이돈구
출연
김영애, 도지원, 송일국, 김소은, 홍정호
정보
가족 | 한국 | 94 분 | 2014-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