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박스트롤 - [리뷰] 우리도 위로 올라가고 싶다

효준선생 2014. 10. 30. 07:30






 어떤 영화? 인간과 상자괴물을 통해 사회적 계급의 모순을 토로하다




통금이라는 단어를 아는 세대라면 최소한 나이 마흔은 되었을 것이다. 치안과 방범을 위해서라며 오랫동안 존치한 이 제도는 사실상 국민들에게 족쇄를 채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82년 신군부의 국민유화책의 일환으로 통금을 해제시켰지만 국민들은 그게 왜 필요한 지 알게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당시엔 그 오밤중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일 자체가 불필요한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 박스트롤을 보면서 문득 어린 시절 통금 시간에 다되어 가는데도 귀가 하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 조렸던 기억이 났다. 귓가를 자극하는 사이렌이 울리고 나서도 한참 있다가 초인종 소리가 나면 그제서야 안도의 한 숨을 돌렸던 일들. 도대체 아버지는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가족들이 걱정을 하는 것도 모르고 돌아다녔던 것일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적막한 거리에 방범대원의 딱딱이 소리와 함께 찹쌀떡을 사라 외치던 소리도 함께 했다. 그 사람은 무슨 수로 그 야심한 시간에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일까 어린 동심에 통금은 그런 모습으로 기억에 남았다.






인간들이 버린 폐품에서 사용할 만한 것들을 재활용해 지하 세계에 자신들의 공간을 마련하며 사는 박스트롤들, 박스를 뒤집어 쓰고 외부로부터의 위험을 막아내려고 하지만 그들은 결코 항거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을 괴물보듯 하는 인간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주로 밤에 움직이고 지하공간 안에서 만족하며 살 뿐이다. 하지만 버려진 채 지하공간에서 발견된 한 어린 아이로 인해 그들은 자신의 삶에 새로운 변혁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사회 계층의 불합리성과 모순을 건드리는 사회파 영화의 변형으로 보이기도 한다.






치즈 마을을 배경으로 그곳 사람들은 비교적 윤택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연회를 열고 맛난 치즈를 즐기고 한 블록 떨어진 밀크 마을, 버터 마을을 오고 가는 그 곳 사람들. 유일한 걱정거리라면 밤에 나타나 어린 아이들을 잡아가는 박스트롤의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한 부류의 인간이 박스트롤을 죄다 잡아다 주면 그들과 같이 흰 모자를 쓸 수 있겠냐며 조건을 걸어온다. 치즈 마을의 영주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공존보다는 파괴, 그리고 훼멸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하려는 시도는 누군가의 손을 빌어 벌어지고 그들은 나름의 목적을 위해 잔인한 방법으로 박스트롤을 잡아들이려고 한다.






이 영화에서 박스트롤의 정체성의 근원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은 없다. 인간과는 다른 생명체인 것은 맞다. 인간의 말도 하지 못하고 호전적이지도 않다. 물론 잘 먹고 잘 살면 좋겠지만 욕심도 부릴 줄 모르는 것 같다. 그럼에도 자신들을 노리는 빨간 모자를 쓴 사내의 등장에 혼비백산할 뿐이다. 믿는 건 자신들과는 다른 인간 박스트롤 에그의 활약 뿐이다.






이 영화가 사회 계층에 속한 인물 군상을 그렸다고 했는데 크게는 세 부류다. 우선 기득권층, 부유함의 상징인 치즈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외부의 위협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 현상 유지가 최선이며 다들 비슷한 경제력을 갖고 있다. 둘째는 빨간 모자의 사내들이다. 이들은 불안한 층위에 있다. 허름한 창고가 주된 거처이고 이곳에 박스트롤을 잡아다 넣지만 보다 큰 목표는 최고층위를 상징하는 흰색 모자를 쓰기 위해 애를 쓴다는 점이다. 생김새는 기괴하기 이를데 없고 잔인하기 까지 하다. 물론 치즈 마을의 영주로부터 윤허를 얻어야 하는 제약에 순응한다. 마지막으로는 지하 세계에서 추레하게 살고 있는 박스트롤들이다. 경제적으로는 빈한하지만 그들은 그걸로 서로의 것을 빼앗거나 권력 다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듯 각자 처한 사회적 계층의 근원에는 경제력이 자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빨간 모자 사람들이 치즈를 구해다 먹은 뒤 일어나는 부작용이다. 엽기적인 비주얼로 그려낸 이 장면은 마치 빈민이 하루아침에 졸부가 되기 위해 무리를 하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하는데 그 상징성에 혀를 차게 된다. 도무지 서로 섞일 것 같지 않는 이런 구도는 결국 인간이지만 과거의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박스트롤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 아이에 의해 해결의 실마리가 열린다. 이 영화는 클레이메이션 장르면서 고딕 호러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정성이 가득 들어간 점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이 정도 만들어 내기 위한 은근과 끈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박스트롤 (2014)

The Boxtrolls 
10
감독
그레이엄 애나블, 안소니 스타치
출연
엘르 패닝, 사이먼 페그, 토니 콜렛, 아이작 헴프스터드 라이트, 벤 킹슬리
정보
어드벤처, 가족 | 미국 | 96 분 | 2014-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