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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독재자 - [리뷰] 청산되지 못한 잔재의 기억을 안고 살다

효준선생 2014. 10. 21. 07:30





 어떤 영화? 대한민국 현대사의 정치와 경제면의 몇 페이지를 간추리다




배우로 사는 게 정말 힘들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영화 홍보를 위해 다수의 스태프를 대동하고 극장에 나타나 자기를 신기하듯 쳐다보는 불특정 다수의 영화 관객을 향해 멋쩍은 웃음을 지을 때와 인터뷰를 하면서 맡은 배역에 너무 몰입되어 아직도 그 배역에 젖어 산다고 할 때다. 전자가 짧게 지나갈 행복한 고민이라면 후자는 다음 작품을 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 그를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괴롭힐 동인이 될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 소위 가스통 할배나 유사한 성향의 단체 회원들이 뭔가를 하고 다니는 걸 직접 본 적은 없다. 매스컴을 통해 볼 수 있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들의 편향적 정치색은 둘째 치고 좀 안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 그들의 열정을 쏙 빼먹은 정치세력과 그들을 이어받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일을 하느라고 주름 팬 얼굴을 가리기라도 하려는 듯 시대에 맞지도 않는 의상과 악세사리를 걸친 모습이라니. 그들에겐 노스탤지어란 말인가






배우와 가스통 할배에 대한 감상을 연이어 적은 이유는 바로 영화 나의 독재자 때문이다. 이 영화는 무명 연극배우가 졸지에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엉뚱하게도 김일성 대역을 하기 위해 연기에 몰입하는 과정, 그리고 시절이 바뀌어 아들이 아버지 나이가 된 뒤에도 과거의 향수가 지나쳐 망상 증세를 앓게 된 사연들이 애잔하게 흘러가는 드라마다.






이 영화는 크게 두 가지 가지치기를 하며 진행된다. 비록 이름 없는 배우지만 아들 앞에선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시간이 흘러서도 변하지 않음을 상기시킨다는 부자간의 정이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권력에 의해 강제로 주입된 각인이 얼마나 개인의 정서를 옭아매고 있는지에 대한 상흔(傷痕)이 그것이다. 마치 별개인 듯 흩어졌다가도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다시 한 곳에서 만나기를 반복하면서 영화는 개인사와 시대상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






1971년 국민들은 이러다가 통일이 될 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빠질 만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분단이 된 지 이미 20년이 다된 마당에 휴전선에서 들려오던 훈풍으로 당시 이산가족을 비롯한 적지 않은 사람들은 드디어 고향에 가보나 했다. 이듬해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부푼 꿈은 터질듯 커졌다. 하지만 그것들이 물거품이 되는 데는 채 100일도 걸리지 않았다. 유신독재가 시작되었다.






영화의 전반부는 바로 이 시기를 다루고 있다. 남북의 수반이 만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배우까지 동원해 연습을 시키는 과정이 어찌 보면 코미디 같지만 그 과정에선 누군가에겐 인생을 걸어야 가능했던 지난한 며칠이었다. 영화에도 잘 묘사되고 있다. 고문을 당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강압적으로 주입당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그 일을 어떻게 해서든 해야 하는,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그 무의미한 일들이 그에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고 말았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허무함은 해냈을 때의 시원섭섭함과는 다른 감정이다. 유신철폐, 독재타도라는 시위대의 구호가 빗발치는 가운데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버스에 탄 그의 모습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그의 삶의 후반부, 도무지 색칠이 불가능할 것 같은 부분은 그의 아들이 이어받는다. 대한민국은 그의 아들 때에도 여전히 시끄럽다. 각종 개발이권이 난무하고 그의 직업은 다단계다. 사채에 시달리고 쫒기는 신세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람들은 독재시절이라거나 남북과의 관계 개선에 목매달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 밥 벌어 먹으면 고맙고 남보다 빨리 돈을 모으면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영화에선 이를 분당개발과 연관짓는다. 20여년이나 지났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과거의 고약한 향수에 빠져있고 아들은 경제적 곤란함을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와 어색한 동거를 한다.






사실 이 영화의 장르를 코미디라고 부르기엔 어폐가 있다. 그래도 코믹한 부분이 살아있는 부분은 바로 아버지와 아들이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가는 이 짧은 동거 기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전히 버겁기 그지없다. 사라져야 할 잔재로 생각했던 과거 권력의 끄나풀이 다시 등장하고 여전히 강압적인 모습으로 철지난 역할극을 던져주는 그들의 모습이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배우로서의 역할을 긁어내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해서였다. 배우로서의 사명감을 말하자면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은 일인극, 얻어 맞아가며 체화된, 죽기 전까지 기억에서 지울 수조차 없는 폭압적인 대사암기와 연기. 시대가 흘렀다. 그저 미친 놈 소리를 듣는 수준이지만 그걸 바라보는 이미 커버린 아들과 모든 사연을 같이 목도한 관객에겐 그의 연기가 아픔으로 다가온다.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개인을 버려야했다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떠돈다. 그 시절엔 그럴 만도 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방송 프로그램 한 귀퉁이를 빌어 당시의 개인적 아픔을 마치 아무 일도 없듯 꺼내들고 이윽고 훔쳐내는 눈물 한 줄기로 그들은 지금의 생활을 영위한다. 그들에겐 지우고 싶은 기억이지만 꺼내놓고 생각해보면 그리울 수도 있다는게 참으로 슬픈 일이다. 재차 말하지만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개인적 고통과 시대상을 잘 따라간 작품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나의 독재자 (2014)

7.8
감독
이해준
출연
설경구, 박해일, 윤제문, 이병준, 류혜영
정보
드라마 | 한국 | 128 분 | 2014-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