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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금시대 - [리뷰] 자유롭게 날고 싶었던 그녀, 샤오홍

효준선생 2014. 10. 17. 07:30






 어떤 영화? 31살의 일기로 짧고 굵게 살다간 중국의 여류 작가 샤오홍의 일대기




중국 현대문학사 수업시간에 그녀의 이름을 스치듯 배우고 지나간 기억이 난다. 당시 대다수의 문인들이 그랬듯 그녀 역시 항일구국 전선에서 문예활동을 했고 그런 이유로 현재까지 중국인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그녀. 그녀의 필명에서 느껴지듯 강렬한 반항아적 기질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자유롭고 싶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운명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 샤오홍[蕭紅-본명 張乃瑩]이다.






영화 황금시대는 그녀의 일생이 편년체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시절 동북 하얼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어설펐던 첫사랑과의 좋지 못한 기억, 그리고 버려지다시피 했다가 그녀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샤오쥔[蕭軍-본명 劉三浪]과의 만남과 동거 생활, 그의 권유로 쓴 작품으로 당대 최고의 작가 노신과 만나게 되는 인연, 그리고 밀려 들어오는 일본군을 피해 전국을 떠돌며 항일의 전선에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두고 격렬하게 갈등하는 모습들이 담겨져 있다.






사실 이 영화는 그녀를 상당한 로맨티스트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샤오쥔과의 하얼빈 시절의 이야기는 마치 신혼시절을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으면서 즐기는 젊은 부부의 모습처럼 자유분방했고 그와 헤어지는 중반부 까지 마치 떼어서는 안될 인연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인연은 길지 않았다. 샤오쥔은 신중국이 들어선 뒤에도 상당히 오래 산 편이고 상대적으로 요절한 그녀를 두고 회고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진정 사랑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랑이 영화의 흥미를 끄는 소재라면 그녀의 문학적 소질은 왜 그녀가 만인의 사랑을 받는 작가인지 설명해주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하겠다. 곤경에 처한 순간 각혈을 해가며 써내려간 그녀의 글 솜씨는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롭고 서정적이라 칼에 베일 것 같이 전선문학에 매몰되었던 당시 다른 작가와는 기풍이 좀 남달랐다. 늘 쫒기듯 지나야 했던 힘든 노정(路程)에서도 그녀가 보여준 작품들에선 바로 인간의 정이라는 게 숨쉬고 있었다. 이는 노신도 어느 정도 인정한 바 있다.






샤오쥔 역시 중국 문학사에선 빼놓을 수 없는 문재(文才)지만 평론가 호풍의 말에 의하면 샤오쥔의 글이 깊이가 있다면 샤오홍의 글엔 감수성이 절절하다는 평가가 적절하고 이런 말을 들으며 역시 글을 쓰는 작가였던 샤오쥔에겐 일말의 피해의식이 있지 않았나 싶다. 나중에 임분을 떠나 다들 서안으로 피난을 떠나는데도 샤오쥔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유격대원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도 그런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반대로 샤오홍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단목홍량의 경우 그 역시도 문인이지만 아낌없이 샤오홍의 소질을 인정해줌으로써 그녀의 환심을 산 장면도 나온다.






시절은 천재의 재주를 시기하는 법이다. 전쟁 난리통 속에 적지 않은 작가들은 각종 병마와 싸우면서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노신이 언급한대로 자신과 샤오홍은 쉽게 병드는 체질이라는 말이 맞았던 것 같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움직였다. 치료를 목적으로 살지도 않았고 목숨을 연명하려고 발버둥치거나 애걸하지도 않았다. 늘 그녀 주변엔 비슷한 처지의 문인들이 있었고 그들과 주고받은 정이라는 건 그녀 사후, 이렇게 한 편의 영화에 남겨놓을 수많은 증언들로 이어졌다.






장장 3시간 남짓되는 시간의 대부분은 그녀와 작가들의 작품 속의 구절을 대사와 설명으로 처리했다. 또 등장인물들이 아예 카메라를 응시하고 자신이 샤오홍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을 나레이션 하기도 했다. 이런 걸 통해 좀더 인물 샤오홍이 부각이 되고 연기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질 이유 없다는 듯 나선 탕웨이의 열연이 뒷받침 되어 시간을 채워 나갔다. 현존하지 않는 배경을 고증해가며 30,40년대 미술로 재 등장시킨 고풍스러운 장면들과 실존 인물들이었던 많은 문인 작가들을 캐릭터한 공로도 눈 여겨 볼만 하다.






이제 와서 이웃 나라 작가의 일생에 대해 디테일하게 봐야 할 이유가 있냐고 묻는다면, "글쓰는 자체에 그토록 치열하게 전투하듯 쓰는 세상이 이젠 없어 보이기에 이 작품은 후대 작가들에게 일종의 계몽이 되어 준다."고 대답하고 싶다. 시대가 난리 북새통에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마당에 여자의 몸으로 겨우 31년을 살다간 그녀에게서 어떤 것들을 봤을까 영화 속 내용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이토록 강렬하게 사는 것 이상으로 의미있는 삶은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실제 샤오홍과 샤오쥔의 모습. 그녀의 행적에서 한국의 작가 이상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