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보이후드 - [리뷰] 12년의 세월을 농축한 결과물, 찐하다

효준선생 2014. 10. 14. 07:30






 어떤 영화? 무려 12년 동안의 조각을 모아 퀼트처럼 엮은 시간여행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는 것처럼 적당한 것도 없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에 태어나 볕과 자양분을 가득 머금고 자라 푸른 잎을 보이고 가을이 되면 어느새 성숙한 어른이 되고 언제 그랬냐는 듯, 겨울이 되면 또 다른 여정을 떠나야 하는 것처럼. 그 누구도 이런 인생의 사이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들이 태어나 쑥쑥 자라는 건 삼라만상 그 어느 것보다 위대해 보인다. 어른이 되어 더 이상의 성장을 멈춘 채 주름살이 늘고 흰 머리카락이 돋아나오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다. 여드름이 생기고 어느덧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아이들 앞에서 마치 자기의 그 시절을 떠올려 보는 것. 사람이 다음 세대에게 양보할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인생의 신호인 셈이다.






영화 보이후드, 소년기(少年期)의 의미를 가진 이 영화는 독특한 한 가지에 우선 놀라게 된다. 누나와 장난치는 아이의 모습에서 시작한 한 소년의 모습이 실제로 자라는 동안 그들을 카메라 앞으로 끌어내 담아냈기 때문이다. 기존의 성장담을 담은 영화들은 비슷하게 생긴 아역 배우들을 성인 배우들의 들러리로 삼았다면 이 영화는 메이슨과 사만다 남매로 나오는 어린이들을 무려 12년 동안 지치지 않고 등장시킨다. 다시 말해 그 아이들이 나이 듦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최종 완성을 미루고 기다려 주었다는 것이다. 실로 엄청난 끈기의 집약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연출자인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자기의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 에단 호크와 자신의 딸인 로렐라이를 투입해 자신의 고향이자 어린 시절을 보낸 텍사스의 휴스턴과 오스틴 일대에서 이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게다가 극중 비슷한 상황을 실제로 경험했던 여배우 패트리샤 아케이트까지 어머니 역으로 출연시켰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2000년대 초반의 정치적 현안과 시대상도 적절하게 삽입했다. 만약 감독이 중간에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 영화는 그 긴 시간을 묵혀가며 찍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완성된 이 영화는 마치 장독대 항아리에서 끄집어낸 종갓집의 장맛이 난다. 다름 아닌 실제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영화는 아들인 메이슨을 주로 등장시키지만 다른 가족들, 이혼하고 따로 사는 친생부,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와 두 명의 의붓아버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이웃과 지인들. 그들은 다들 영화와 함께 나이 들어갔다. 개중엔 중간에서 아웃한 사람도 있고 중간에 끼어든 사람도 있다. 그리고 배우로서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한결 같이 그 엄청난 프로젝트의 일원이 된 것에 대해 하염없는 자긍심을 갖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메이슨의 고교 졸업파티 장면에서 다시 등장한 앞 부분의 배우들.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메이슨이 이만큼 커서 이제 어른이 되려고 함을 축하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나이듦도 마찬가지도 대견해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한해가 다르게 커가고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겪을 법한 에피소드들을 큰 부담없이 넣어 두었다. 어디로 튈지 모를 천방지축같은 아이들이 그래도 큰 말썽없이 자란 건 부모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었다. 복잡한 부모들의 관계, 어제까지만 해도 생면부지의 남남이 하나가 되어 가족의 이름을 달게 되었음에도 이들은 크게 어색해하지 않았다.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타이틀 보다 더 중요한 건 이들 대개가 아이들이 커가는 데 이렇게 저렇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법적으로는 남인 생부가 거의 쉬지 않고 이들 남매와 만나며 어른이 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은 훈훈함을 넘어서 한국의 아버지들에게 모범답안을 주는 것 같아 보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돈만 벌어다 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그 나이 아이들의 고민을 마치 친구처럼, 그리고 상담교사처럼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모습에서 가슴 한켠이 느꺼워졌다.






볼을 꼬집고 싶을 정도로 귀엽기 짝이 없는 6살 소년이 어느새 여드름과 수염이 난 18살 청춘이 되었다. 오래 함께 하면 모습도 닮는다 하더니만 엘라 콜트레인(메이슨 역)의 모습이 에단 호크의 젊은 시절을 방불케 한다. 그가 대학생이 되어 새로운 사랑을 만날 조짐을 보이며 다음 세대를 만들어갈 채비를 하는 모습이 그저 12년의 세월을 카메라만 세워 놓고 찍어낸 무덤덤한 다큐멘터리만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려 166분이나 되는 장편 드라마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볼 수 있었던 건 누군가의 12년의 삶을 압축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 감독의 노고에 대한 고마움이다. 오히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어 미안했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한 소년의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이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