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제보자 - [리뷰] 달리는 말에서 뛰어내릴 수는 없었다

효준선생 2014. 10. 3. 07:30





 어떤 영화? 오늘날 한국, 한국인의 민낯에 메스를 들이댄 제대로 된 사회파 영화 





배운 게 많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이 쉽게 앉지 못하는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행위는 지선(至善)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들에겐 자기 판단이 모든 행위를 좌우하는 단초가 되고 주변인들에 의한 제지는 받아들일 수 없는 모욕에 가깝다고 여긴다. 그런 아집이 때로는 인류의 문명을 끌고 가는 원동력으로 작동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궤멸을 앞당기는 좋지 않은 선례가 되기도 했다.






2000년 대 중반, 한국인들은 귀가 번쩍 뜨일 만한 뉴스 하나를 접하게 된다. 최고 학부의 교수가 세상의 모든 질환으로부터 새 생명을 얻게 해주겠다며 줄기세포 이론을 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비약적 발달로 못하는 것이 없게 되었다는 믿음은 마치 앉은뱅이에게 뛸 수 있게 해주겠다는 메시아의 재림과 다름없었고 사람들은 그와 그가 내보이는 결과물에 주목한 상황이었다.하지만 모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은 그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 토를 달기 시작했고 이어지는 후속보도에 의해 세상의 구원자였던 것으로 보였던 그는 나락의 길에 떨어지고 말았다. 방송이 과학의 영역에 대해 메스를 댈 수 있느냐의 문제에서 시작해 윤리적인 문제로 비화되며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린 그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에겐 세상에 절대적인 믿음이란 있을 수 없다는 걸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 제보자는 바로 이 황우석 박사 사건을 모티프로 극화했다. 다루고 있는 내용 자체가 그 당시 들끓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잘 구성해냈고 가공의 인물이 채워 놓은 드라마적 구성은 강온을 잘 조절해냈다. 사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대개 실재했던 사람들이고 그런 탓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크게 거슬리지 않았던 건 이미 이 사건이 우리들 기억 속에서 더 이상의 논란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게 조직화되어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사건의 당사자들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간헐적인 소식에도 사람들은 무덤덤하게 반응할 뿐이다. 당시를 떠올려 보면 특히 제 몸을 운신하지 못하는 지체부자유 장애인들의 환호를 많이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특정 질환으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당장 복제라도 해서 또 하나의 아이를 얻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많이 피력했다. 마치 소원을 들어줄 신의 재림을 간절히 바라는 중생의 모습이었다. 






이 영화는 기자로서의 사명감에 불타는 방송사 PD와 자신의 연구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를 고민했던 박사, 그리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면서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것이 개인적 양심에 위배되지 않을 거라는 걸 갈등하는 한 젊은 과학자의 분투가 녹아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사회적 감정이 있다.






이 영화를 녹록치 않은 사회파 영화라고 부르고 싶은 건 몇몇 소수의, “내 생각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라는 말을 그려낸 데에 그치지 않고  그많은 사람들이 왜 허구에 가까운 이론이라는 걸 반신반의하면서도 그를 지지했는 지를 균형감 있게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국 앞에 몰려와 시위를 하는 모습이 무섭다는 기자와 국익을 위해선 설사 좀 잘못된 것이라도 입 다물고 있자는 목소리 큰 사람의 주장도 결국엔 사회적 감정들인 셈이다.






줄기세포가 소재였다면 언론이 해야할 역할은 이 영화의 더 큰 주제라 하겠다. 방송 여부를 놓고 보이지 않는 손의 움직임과 고위층을 위협하는 목소리등은 모든 방송은 시청자가 판단할 몫이라며 방송 윤리 강령을 외치는 담당PD의 절규는 시대의 아픔이 되고 말았다. 더 이상 이런 기자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시절이다. 진리보다 국익을 내세우며 가진 자의 입장만 호도하는 세상과 사건의 당사자와 입을 맞추는 데 익숙한 언론인의 모습을 보면 비록 절대 악인은 없다고 해도 사회가 깨끗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 맞는 듯싶다.






만약 줄기세포 조작 사건이 과거의 일이라면 언론의 제 모습 찾기는 현재와 미래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인 셈이다. 이런 주장은 지금 대한민국에 대한 경종이다. 결코 너무 멀리와 버린 것도 아니고 허울뿐인 국익을 위해 포기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