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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콜렛 도넛 - [리뷰] 좋은 부모의 조건, 편견을 깨다

효준선생 2014. 9. 24. 07:30






 어떤 영화? 어른들의 선입견과 고통 받는 아동의 입장이 충돌하면서 겪는 감수성 짙은 드라마





아직 부모의 온실이 필요한 나이, 남들과 다른 모습 때문에 세상이 만들어 놓은 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서성거리는 아이가 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여자아이처럼 인형을 끌어안고 어른의 눈치를 봐야 하는 마르코. 그에겐 그게 세상의 이치고 흐름인줄로 알았다.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사육되듯 클거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아수라장 같은 평화도 오래가지 못했다.






핵가족이라는 말이 보편화되기 전, 가족은 최소 부모와 자식 세대의 공존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단독 세대주 역시 하나의 사는 방식이라는 관점이 점점 호의적으로 변해갔다. 외롭겠다. 청승맞다 라는 편견이 외부로 노출되지만 않는다면 혼자 사는 것도 그렇게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누군가의 보호가 여전히 필요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유효하다면 그를 위해 나설 줄 어른이 있어야 한다는 건 사회가 공통적으로 떠 맡아야할 사회적 부담이다.






부모 대신 누군가가 아이를 양육해 주고 그 아이가 자라서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자기 앞가림을 하게 된다면 몰라도 약 20년은 그렇게 부모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겐 그게 쉽지 않다.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라면 더더욱 힘든 노릇이다. 영화 초콜렛 도넛은 다운 증후군을 가진 어느 남자 아이의 입장에서 그의 버팀목이 되어줄 어른으로 과연 누가 더 적합한 지를 묻는 사회적 메시지가 강렬한 드라마다.






이 영화는 70년대 말 실화를 바탕으로 극화된 작품인지라 당시의 시각이 좀 더 많이 묻어나는 장면들이 몇몇 있다. 아이의 양육권을 둘러싼 기득권층과의 마찰에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부분이 바로 주인공 남자 두 사람의 성적 정체성이다. 소위 게이라고 하는 동성애자인 그들은 한 사람은 밤무대 가수고 다른 한 사람은 기득권에 한 발 정도 담근 검사임에도 한 아이의 양육을 책임져 보겠다는 의지를 피력해보지도 못한 채 좌절을 겪는 중이다.






물론 지금의 시각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동성애자들에게 장애를 가진 아이를 맡겨 키울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국한 되지 않는다. 영화엔 드러나지 않게 상당히 많은 차별이 존재한다. 성적 정체성에 대한 시각, 마약 사범에 대한 시각, 입양과 파양에 대한 시각, 흑인 율사에 대한 시각등등. 그런 것들이 총결되어 옳은 부모란 나와는 다른 사람, 혹은 생각 속에선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기존의 사고 영역을 침범할 수 없게 만든 선입견에서 충돌하고 폭발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 제기와 해결방식은 대개가 어른들의 몫으로 제한된다. 결국 어디로부터도 선택받지 못하게 된 아이에겐 이 세상은 자기 의지대로 되는 것도 없고 자신을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가진 편견만을 내세우며 핏대를 올리는 어른들만 사는 세상이라는 걸 고착할 뿐이다. 그리고 그걸 알았을 때, 그를 반겨준 건 아무데도 없었던 셈이다.






실제 다운 증후군을 가진 배우와 실제 커밍아웃을 한 배우의 연기들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핍진해보였다.  이 영화는 음악 영화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좋은 노래들이 여럿 등장한다. 특히 영화의 영어 제목이 들어간 밥 딜런의 I Shall be Released를 부르는 알란 커밍의 노래가 마치 이들의 운명을 가늠하는가 싶어 귀를 기울여 듣게 된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