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자유의 언덕 - [리뷰] 북촌에서 사랑을 묻고 다니다

효준선생 2014. 9. 21. 07:30






  어떤 영화 ? 인생살이의 어느 타이밍을 북촌 러브 스토리로 엮은 소품





제목만 보고는 왜 자유의 언덕이라고 지었을까 잠시 궁금해졌다가 영화 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내 궁금증이 풀렸다. 주인공이 자주 찾는 북촌의 카페 이름이 지유가오카, 일본어로 자유의 언덕이다. 이렇게 일본의 입김이 제목에 확연하게 반영된 만큼 주인공으로 나오는 일본인 카세 료에겐 상당한 폭의 권한을 주었다. 북촌 일대를 마음껏 헤집고 다녀보라는. 그렇게 이 영화는 그의 필모그래피에 주연작으로 올라가게되었다. 






영화 자유의 언덕은 이제는 ‘홍상수 표’라는 이름이 없으면 안될 정도로 브랜드 마케팅 하나는 제대로 된, 그런 이유로 ‘또?’ 라는 반응도 낯설지 않게 된 그의 열여섯 번째 장편영화다. 미국의 영화 감독 우디 앨런이 미국 뉴욕을 지겹도록 찍어대다 유럽으로 눈을 돌린 것처럼, 그 역시 한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이제는 서울 북촌에 터를 잡은 느낌이다. 그만큼 이번 영화에서도 북촌 일대를 쏘다니는 주인공 남자를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만들어 붙여 놓았는데 다른 작품과는 달리 배경이 주는 감각은 전만 못해졌다. 어쩌면 우리 눈이 여러 매체들을 통해 익숙해 진 탓이리라.  그리고 배경안에 툭 던져진 듯한 인물들의 소요유(逍遙遊)와 너스레들의 향연은 이내 이 영화가 '그'의 영화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한국에 온 일본인 모리, 북촌 게스트하우스에 보름 정도 기거하며 조우를 꿈꾸지만 원하는 사람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는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을 반복한다. 개중엔 사랑의 감정 비슷한 것들을 느꼈던 사람도 있고, 동성 친구처럼 편한 관계의 지인도 만나고 그가 소개한 영어를 구사하는 노랑머리 외국인도 만난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 우연을 가장한 억지스러운 만남은 물론 자유로워 보이긴 하지만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정말 할일 없이 그냥 놀러 온 어느 시간 많은 외국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가 카페에 앉아 있는 걸 보고는 한국에서 영화 프로듀서로 일한다는 남자가 말을 걸고 그 말을 듣고는 성을 낸다. 다름이 아니라 일 안하고 있다니까 마치 예술가 같다고. 그는 왜 화를 낸 것일까 자신이 할 일 없이 외국에 나와 여자들에게 관심이나 끌려는 호색한 정도로 보였나 싶기도 한 모양이다. 그런데 참 운이 좋은 건지, 그가 찾는 사랑은 지뢰밭처럼 널려 있던 모양이다. 그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들 그에게 호의적이다. 마치 오랫동안 그의 출현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양 군다. 설사 그가 찾던 사랑과 해후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방인일 수 밖에 없는 남자로서는 크게 손해날 일도 아니다.






시간은 이 영화의 핵심 소재다. 그가 찾는 여자가 현기증을 쓰러지면서 손에서 놓친 편지 속 내용이 뒤죽박죽되면서 남자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 순서를 꿰어 맞출 필요는 없어 보인다. 늘 그렇듯이 하나의 씬에 담긴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세상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운 좋게 걱정하던 일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도 그렇다. 인연이 될 사람도 우연히 만날 수도 있고 철저하게 계획해 놓았던 일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일도 다반사다. 중요한 건 마지막 아니겠는가.






남자가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여자와의 만남도 기승전결을 따라가지 않는다. 만나고 싶어했던 여자와의 만남은 기약도 없고 대신 북촌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오고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지는 사연들,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지금이라는 것만 부각된다. 이렇게 표면적 장면들의 나열을 보고 있노라니 이 모든 장면들이 어쩌면 여자가 순서없이 읽고 있는 편지 속의 장면을 옮겨 놓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예 남자는 한국에 온 적도 없이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는 환영 속의 인물이었는지도.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자유의 언덕 (2014)

HILL OF FREEDOM 
7.5
감독
홍상수
출연
카세 료, 문소리, 서영화, 김의성, 윤여정
정보
| 한국 | 67 분 | 2014-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