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메이즈 러너 - [리뷰] 기성세대가 만든 장벽을 넘다

효준선생 2014. 9. 15. 21:37






어떤 영화? 어른들에 의한 희생양이 아닌 자주적인 인격체로서의 청소년의 자화상을 조명하다





가까운 미래, 지구는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한 재앙의 도래, 더불어 창궐하는 판데믹의 결과로 극소수의 인간만이 생존을 허락받게 된다. 지구는 마치 백악기 말 어떤 이유로 사라진 공룡처럼 인류도 그렇게 소멸시킬 준비를 한 모양이다. 하지만 인간은 공룡과는 달리 모종의 준비를 시작했고 생존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비인간적이라도 해야할 사명감 같은 걸 갖고 있던 모양이다.






지구에 한바탕 변고가 일어나고 그 후의 일들을 담은 소위 디스토피아 영화들은 마치 그 줄기가 한 뿌리에서 나오듯 유사한 것도 사실이다. 대개는 유명 소설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면 히트를 친 작품들도 적지 않다. 영화 메이즈 러너 역시 제임스 대시너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으로 결론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소년들의 성장기를 담은 영화처럼 보이고 결말에 이르면 왜 그들이 그렇게 까지 생고생을 해야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물론 이번에 선을 보인 영화엔 결론이라는 게 없다. 앞으로 나올 2편의 후속 작품을 통해 큰 그림이 그려질 텐데, 이번엔 그런 이유로 제한된 공간에 갇힌 채 자기 또래들끼리 지내며 오로지 그곳을 빠져나올 궁리에 몰두하는 10대 후반 청년들의 모습들을 주로 담고 있다. 물론 그들이 왜 그곳에 갇혀야 하고 그리버 라고 부르는 괴물과 사투를 벌여야 했는지, 철벽처럼 보이는 시멘트 미로 안에서 탈출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안온한 미래를 과연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보는 내내 궁금증이 가시지를 않았다.






어쩌면 위에 언급된 궁금증이 이번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그들이 머무는 미로 안의 또 다른 스퀘어(글레이드)는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자 어떻게 보면 온실이다. 아직 어른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들, 그들을 이끌어 주는 성인 멘토는 없다. 오로지 한 달에 한 번씩 그곳으로 배송(?)되는 또래의 남자아이들은 어색감을 감추고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어 각자의 역할을 분배하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던 중이다.






주인공인 토마스의 경우, 기존 남자아이들과 좀 다른 행보를 한다. 왜 그들이 갇혀 사는 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 미로 안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대한 궁금증, 이런 걸 끊임없이 제시하고 기존의 멤버와 갈등을 심화시킨다. 다시 말해 아이들만의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이미 기득권과 현실 안주에 만족하는 부류들도 있다는 말이다. 외부로부터 제공되는 필수품에 만족하고 비록 답답한 곳이긴 해도 밤에 미로가 닫히면 그들을 위협하는 괴물과도 격리된다. 이런 환경이 그들을 보수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해도 좋다. 그리고 그 중심엔 또 한 명의 이야기 축인 갤리가 있다.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을 보면 어른들의 세상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무한한 호기심이 외부로 지향하는 걸 보며 세상과 맞설 준비를 한다며 대견해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갤리는 좀 다른 견해다. 몸은 아이지만 정신은 보수적 사고를 택한 셈이다. 두 사람의 선택이 나중에 기로에 선다는 사실이 흥미진진하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분명 리더가 될 또래의 뒤에 선다는 건 아주 보편적인 일이다. 제목처럼 미로를 달리는 소년들에 의해 세상은 바뀔 것이고 그 안에서 치고받고 싸우다 보면 어느새 몸도 마음도 한층 자라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많지 않다. 그들이 왜 그곳에서 새로운 환경을 찾아가야 하는 것인지 마치 부처님 손바닥에 있는 것 같은, 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꼼짝할 수 없는 폐소의 공포가 느껴진다. 진정 지구의 종말이 멀지 않았어도 벗어날 수 없는 건 결국 있다는 말인가. 미로에 갇힌 것 같은 공포감은 관객들에게 공히 전달되었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