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나의 첫번째 장례식 - [리뷰]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효준선생 2014. 9. 7. 07:30





 어떤 영화? 인생을 반 정도 살았을때 되돌아보게 만드는 자기 성찰의 기회를 주다





불혹의 나이 마흔, 가정도 이루고 귀여운 딸아이도 잘 자라고 있다. 남들은 3류 뭐라고 하지만 나름 매니저도 둔 배우다. 오늘도 스튜디오에 가서 어린이들에게 인기인 운 나쁜 토끼 캐릭터를 연기하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오늘은 좀 우울하다. 아무도 생일을 챙겨주지 않는다. 미국 뉴요커인지라 미역국은 바라지도 않지만 맞벌이 아내는 여전히 쌀쌀맞고 딸아이는 자기 방에 놓을 텔레비전을 사달라고 떼를 쓴다. 삶은 왜 이토록 무기력한 걸까 아님 혼자만의 욕심인가. 헛살았다는 기분이 든다.






남자 나이 마흔, 갈수록 대화를 나누는 기회도 줄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주변 사람이 줄어들면 자꾸 엉뚱한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일년을 돌아 다시 가을이 되면 또 한 살 먹는 것 같아 쓸쓸해지기 까지 한다. 확실히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시점이다. 절반 정도 살았다면 반환점은 있어야 하니 말이다.






영화 나의 첫 번째 장례식은 전형적인 소시민으로 살고 있는 윌이 우연히 죽을 기회를 맞아 자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보고 지금까지 살아온 족적을 되짚어 보는 성찰 코미디다. 한때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돈다며 자뻑 마인드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자기가 빠지면 회사가 곧 망할 것 같고, 자기가 죽으면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기라도 할 거라며 의기양양하던 것도 잠시뿐, 만약 자신의 빈자리가 뭔가로 채워지는 건 아닌지, 과부가 된 아내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기는 건 아닌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 된다.






우연히 죽을 기회라는 건 코미디적인 발상이지만 죽지 않았음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난데없이 인도인으로 분장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장면은 아내의 유혹에서 여주인공이 점하나 붙이고는 다른 사람 척하는 장면과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다. 독일 출신의 유대인이 어쩜 그렇게 인도인의 모습과 닮아 있는지, 물론 캐스팅의 묘미를 살린 것이지만 흰 피부정도만 빼면 인도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하지만 살을 맞대고 살았던 아내와 맨날 투닥거리지만 지근거리에서 눈을 마주쳐온 딸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 불상사다. 그런 언밸러스한 불상사가 만들어내는 코미디는 생각보다 짙은 페이소스를 준다.






그 한가운데엔 이미 죽은 자에 대한 평가가 있다. 가깝게 지냈다고 생각한 사람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거나 반대로 자신에 대해 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지긋이 바라보며 윌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조금씩 자기도 모르게 인도 사람처럼 구는 그. 이렇게 나가다가는 정말 다시는 윌로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 인도 이름 비제이 싱과 뉴요커 윌의 사이에 완충역할을 하던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과정에서 그는 불안해졌다.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또 다른 인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내마저도 자신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함에 그 예전 윌의 무가치함에 답답할 뿐이다.






이 영화는 확실히 관객들에게 동화되는 포인트가 있다. 특히 중년 이상의 관객들에게는 윌이 자신의 모습 같아 보였을 것 같다. 만약 자신이 죽으면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까 유산을 두고 싸울지, 혹은 술자리에서 그 녀석 잘 갔다며 안주가 될 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 왔었는지 조차 가물거리게 되는 건 아닌지, 비록 무척이나 궁금하지만 확인할 수 없음이 오히려 행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뉴욕에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지만 인도 영화같은 모습도 다분하고, 섬세하게 마련된 오프닝 크레딧을 비롯해 빈번하게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이 가슴에 콕 박힌다. 가을에 제법 잘 어울리는 독일 감독이 만든 벨기에 국적의 영화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