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 [리뷰] 백조가 훨훨 날때까지 기다려주자

효준선생 2014. 9. 3. 07:30






  어떤 영화 ? 백수는 결코 나머지 인생이 아니라는 걸 예쁘게 표현하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 중에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만끽할 때 라고 답한 기억이 난다. 인간의 특성상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거기서 성취감을 얻는 것도 나름 행복한 일이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그럴 수는 없다. 그런데 세상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에 게으름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늘 일하라며 달리는 말에 다시 채찍질을 가하는 방식으로 노동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하지만 세 끼 식사 걱정할 필요없고 밤에 몸을 누일 공간이 있다면 굳이 잉여의 재화를 축적하기 위해 그런 식으로 혹사식 노동을 할 필요가 있을까






서양인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 대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비경이 있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본 그들의 모습은 유유자적이었다. 한달내내 그곳에 머무는 사람도 봤다. 휴가를 길게 낼 수 있는 시스템의 장점 덕분이기도 하지만 한 곳을 찍고 바로 다음 곳으로 옮겨 다니며 많이 다녀봤다는 걸로 여행의 자랑을 삼는 우리들의 패턴과는 확실히 다른 셈이다. 물론 그곳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낯선 이들과 팀을 꾸려 근처에서 트렉킹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한 곳의 아지트를 삼아 그곳을 찾는 비슷한 사람들과 노닥거리거나 음악을 듣거나 잠을 청한다. 비로소 쉰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한 여자가 있다. 군대갈 필요도 없으니 대략 23살 정도 되었다. 집에 돌아와 그녀가 하는 일은 방안에서 뒹굴거리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게임기를 만지작거리는 것들이다. 어렵사리 대학 공부까지 시켜놨더니 졸업이랍시고 집에 돌아와 하는 일이 전형적인 백수짓이라니, 그녀의 아빠는 속이 탈만도 하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작은 체육용품 가게와 가정집을 겸한 그곳에선 하루하루가 다르지 않다. 드문드문 찾아오는 학생 손님을 맞고 때가 되면 아버지와 딸은 간단한 일본 가정식으로 한 끼를 해결한다. 도무지 사건 사고라고는 있을 것 같지 않는 그곳에 작은 파문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돌아온 뒤 6개월 정도가 지나서다.






영화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만끽하고 사는 일본의 어느 청춘의 모습을 결코 서두르거나 자극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애쓴 슬로우 라이프 무비다. 쳇바퀴처럼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며 사는 도시인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들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런 그녀의 모습에 채근하지 않는다. 그냥 두고 볼 뿐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아주 소심한 방법으로 다시 불러 세울 묘책을 강구하는 아빠가 있을 뿐이다.






모라토리움은 어디선가 들어봤을 것이다. 98년 빚에 쪼들린 각국에선 빌린 돈을 당장 갚지 못하겠으니 배째라며 선언한 것들이 바로 모라토리움 선언이다. 그 여파는 당장 한국에 미쳤으며 IMF체제로 살아야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런 경제적인 용어가 청춘에게 적용된다는 건, 그만큼 취업문제의 심각성도 의미하는 것이고 소위 캥거루족의 양산같은 사회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다마코의 경우는 좀 색다르다.






그녀의 일상을 따라가 보는 건 크게 흥미롭지 않다. 거리엔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 한적한 동네, 가끔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지만 중학교 1학년 남자애로부터 ‘친구없는 여자’라는 조소만 들을 뿐 인 그녀에게 무슨 이야기꺼리가 있겠는가. 이혼한 부모와 친구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사회성이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지금 그녀는 완벽한 쉼을 실천하는 걸로 보였다. 쉬고 있으면서도 늘 주위로부터의 따가운 시선에 쉬는 것 같지도 않고 쉼이 끝나면 마치 엄청난 일을 바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못마땅한 것이 현실이지만 어차피 60년 이상을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면 다마코처럼 완벽하게 유예된 1년은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일이 아니었을까






아빠가 차려주는 소박한 밥상을 지켜보며 참 건강하겠다 싶었다. 별것 아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허기가 진다. 그녀가 아빠와의 소통을 하는 거의 유일한 장소인 밥상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걸 보면 먹고 사는 것 이상으로 행복한 일이라는 건 또 없어 보인다. 세상 또 다른 다마코들의 분투를 기원한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2014)

Tamako in Morator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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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
출연
마에다 아츠코, 칸 스온, 스즈키 케이이치, 나카무라 쿠미, 토미타 야스코
정보
코미디 | 일본 | 78 분 | 2014-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