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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로법칙의 비밀 - [리뷰] 당신의 오늘 하루는 무탈했나요?

효준선생 2014. 8. 10. 07:30





    한 줄 소감 : 지루한 현대인의 일상을 독특한 설정과 미술로 풀어내다





샐러리 맨의 어원을 찾아보면 고대엔 노동을 제공한 댓가로 지금처럼 돈이 아닌 소금을 받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한다. 한달에 한 번 찾아오는 달콤한 보수(報酬)의 유혹은 한 달 내내 괴롭혔던 사직(辭職)의 유혹을 잠재운다. 그럼에도 그 틀에 박힌 일상을 견디지 못한 채 허허벌판이나 다름 없는 무직의 세상에 들어서고 보니 시원섭섭하기 이를데 없다. 다음 일자리를 찾고 다시 보수를 받기 전까지의 심정이다.






영화 제로법칙의 비밀은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는 한 직장인이 낯선 전화를 받고 서둘러 끊어 버리고 난 뒤, 혹시 그 전화가 자신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를 고심하며 보낸 과정을 그린 판타지다. 미래의 어느 시점, IT업체의 직원인 코언은 심각한 수준의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그런 그의 모습은 그가 사는 집과 외부와의 차이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혼자 사는 그의 집은 고요함이지만 대문만 열면 외부의 모든 소음이 그를 괴롭힌다. 이런 상황에 그는 자신의 업무 소화능력을 내보이면서 재택근무를 원하고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된다.






하지만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의 바람처럼 여유있는 삶을 누릴 혜택까지 부여되지 않았다. 회사에서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폐쇄회로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그는 여전히 모니터를 보며 하달된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진땀을 흘려야 한다. 만일 채우지 못하면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말해야 하고 그게 안되면 가혹하다할 정도로 그를 들들 볶는 과정이 이어진다. 과연 그는 무엇을 위해 그 일을 하는 것일까






나이는 50대 쯤으로 보인다. 거미줄이 가득하고 옛 고성을 연상케 하는 허름한 집에서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며 도무지 알 수 없는 수학적 도식과 도형 속에서 머리를 쥐어짜며 일을 한다. 반복적으로 들리는 0= 100%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이 영화의 제목과 같지만 영화에선 그걸 왜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코언을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수식을 맞춰 100%이 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수행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 모든 건 누군가의 감시안에 있다.






그런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 그리고 어디선가 봤다는 생각에 미칠때 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에게 심리적 조언을 해주는 온라인 상담사와 또 혼자인 그에게 성적 자극을 통해 테라피라도 해줄 요량으로 덤비는 젊은 여자, 그리고 자칭 사장의 아들이라며 찾아온 젊은 남자의 도움으로 그는 혼란스러우면서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근근히 이겨나간다.






이 정도가 되면 이 영화의 본심은 어느 정도 읽힌 셈이다. 코언은 다름 아닌 현재를 사는 다수의 보편적 노동자들이다. 사무직이나 공장 근로자나 아니면 일당직 아르바이트든 상관없다.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내 자신의 영위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 운 좋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거나 복권에라도 당첨된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의 모습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일 것이다.






아침 지하철을 타기위해 플랫폼에 도열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코언이 극도로 무서워 하는 수많은 ‘포비아’ 중의 하나다. 혼자서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행복도 챙길 수 있는 여건은 아니다. 극 초반에 독특한 비주얼로 가득한 파티 장면이 나온다. 예사롭지 않다. 어쩌면 회사 회식의 확장 버전이겠다. 그곳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한 채 자신의 이름은 Q로 시작하고 모음 U는 들어가지 않는다며 자신을 소개하는 코언, 그리고 말끝마다 ‘나’ 가 아닌 ‘우리’라는 주어를 사용하는 그를 보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친 그들을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튀어나오는 정제되지 않은 힐링 메소드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마저도 그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아름다운 여성의 애무보다 혼자 하와이 바다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서있는 그의 모습에서 자유를 본다. 도대체 무엇이 현대인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이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철학적으로 그리고 있고 그 딱딱하고 생경함을 상상력 너머의 색채와 미술을 통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밴드 라디오 헤드의 명곡 <CREEP>이 마치 이 영화의 주제의식처럼 톤을 달리해 이곳저곳을 누빈다. 그가 과연 100%의 비밀을 찾았는지, 그리고 힘겨워 보이는 삶에서 위안거리를 찾았는지, 자신을 쓰레기(영화 자막에서 )라고 윽박지르는 이 노래와 더불어 진한 감성을 더해준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제로법칙의 비밀 (2014)

The Zero Theorem 
9.5
감독
테리 길리엄
출연
크리스토프 왈츠, 맷 데이먼, 틸다 스윈튼, 벤 위쇼, 데이빗 튤리스
정보
SF, 판타지 | 영국, 루마니아 | 107 분 | 2014-08-14